컨텐츠 내용
문화가 있는 저녁
그대가 꿈꾸는 소원을
말해 봐
다짐하고 계획하는 계절이 왔다. 무엇인가를 다짐하는 일은 늘 들뜨는 일이다. 다짐이라는 말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으며, 그 희망에 한 발 다가선 느낌이다. 새해의 출발은 누구나 다짐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작심은 세 시간 만에 쉽게 무너진다. 나의 소원을 도와 줄 책을 보며 그 작심을 올해는 지켜보자.
정호승 <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
정호승 시인의 <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준 한 마디>는 일력 형태의 책이다. 하루에 한 장씩 좋은 글을 읽으면 매일 새롭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시다시피 정호승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시를 많이 선보인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그가 전하는 하루 한 마디의 말들은 때로 위로를 주며 때로 감동을 주고 때로 힘을 준다. 한 마디의 말로 하루가 아름다워지는 경험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책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인은 한 마디 말이 일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씩은 그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다이어리의 맨 앞장에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적어놓고 마음을 다독이는 경험 말이다.
그러한 말들이 자신의 현재 처지와 맞물려 마음에 쌓이게 되면 절망은 희망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 얼음처럼 굳었던 마음도 따뜻한 말에 녹아 말랑말랑하게 이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인생이라는 책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구 넘겨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습니다.”라는 말로 가슴에 오롯이 박힌다.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 경구로 가득 차 있다. 매일 밑줄을 그어야 할 만큼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고통, 용서, 치유, 도전, 감사, 승리, 아름다움, 재물 등의 말들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 밭에 떨어져 옥토가 되는지를 체험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안만을 바라지는 말라. 가장 인상적인 말은 12월 31일의 일력이었다. “저는 언제부턴가 실패를 기념하는 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년 12월 31일을 제 나름대로 ‘실패 기념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의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으로 이미 변화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많은 말들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말은 재물에 관한 말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하는 말과 먹고 살자고 하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김생민 <쓰지마! 가계부>
김생민의 <쓰지마! 가계부>는 가장 현실적인 보고서이다. 요즘 가장 뜨는 방송인 김생민은 “스튜핏!”, “그뤠잇!”을 외치며 짠돌이 가정경제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책이라기보다 가계부에 가깝다. 책의 서두에는 친절하게 일별 가계부 작성요령과 주간 결산 작성 요령까지 설명되어 있다. 물론 365일 가계부를 적을 수 있는 난이 일주일에 4페이지씩 할애되어 있다.
쓰지마! 가계부의 보고서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무리한 계획은 피하고, 월급의 50%는 저축하고, 연말정산 환급금은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주택청약통장과 적금도 들어야 하고, 보험은 꼼꼼히 따져서 들고, 소비하는 감정을 자제하고 등의 팁을 매월 앞자리에 보여준다. 그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다. 인상적인 말은 “가계부를 쓰는 것은 마치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면 언제든지 다시 탈 수 있는 것처럼 가계부도 꾸준히 쓰다보면 경제를 운용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는 말이다.
김생민의 책에서 어려운 말은 딱 한 번 등장한다. 경중완급(輕重緩急).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급한 것과 급하지 않은 것을 잘 아는 것이 우리 소비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는 것. 이 화두를 붙들고 가계부를 작성한다면 가장 현실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계부에 붙이는 예쁜 스티커 두 장은 또 하나의 덤이다.
박장호 <샌드백 치고 안녕>
박장호의 <샌드백 치고 안녕>은 최근 출간된 책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자 출판편집자이다. 슈가복싱클럽에서 7개월 동안 복싱을 배우면서 만난 사람들, 친구들, 시인들, 전설의 복서와 스포츠 스타들이 책에 등장한다. 다짐을 실천으로 완성한 과정이 치열하고 재미있게 담겨있다. 저자는 사십대가 되자 100킬로에 육박하는 자신의 몸이 무거워 살을 빼기로 결심한다. 다이어트를 실천하기 위해 선택한 운동은 복싱이다. 박장호 시인은 마흔이 되어 무거워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으키기에 더없이 좋은 운동이 복싱이라고 생각했단다. “마흔과 복싱은 모두 전성기가 지난 것들”이라고 말하면서 마흔이 되어 복싱을 선택한 계기를 “쇠퇴한 것들의 연대”라고 명명한다.
복싱은 가장 원초적이며 감각적인 운동에 속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싱처럼 반복된 훈련이 결과로 이어지는 운동은 없는 것 같다. 복싱은 체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아주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복싱을 배우면서 삶을 배워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한 몸에서 나오는 두 액체, 땀과 눈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땀은 진취, 눈물은 도취 아닐까요.”라는 성찰적 전언들이 책의 곳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다.
복싱은 가장 치열하면서, 가장 배고플 것 같고, 또한 가장 쓸쓸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흔의 삶과 직장인의 삶과 시인의 삶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결심의 순간에 꿋꿋이 그 힘든 복싱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곁눈질해 보자. 새해 우리의 알량한 결심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핵이 터진다면?
강철비
사실상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가볍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우린 실감하지 못한다. 그런 북한의 문이 열리자 거짓말처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당일 저녁에 파주의 한 동네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북한 군부 강경파가 전쟁을 감행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한반도는 핵전쟁의 위험 속으로 빨려든다. 영화 <강철비> 이야기다.
핵의 위험에 빠진 한반도
영화 속에서 병원의 의사는 말한다. 파주에 살면서 이성적으로는 바로 위에 북한이 있는 걸 인지했지만, 이렇게 바로 오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실감하지는 못했다고. 영화는 남과 북이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우린 그렇게 멀어져야만 했을까?
2차 대전 당시 유럽에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분단 당했지만 아시아에선 전쟁 책임국인 일본이 멀쩡한 대신 엉뚱하게도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분단 당했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데, 피해자만 처벌받는 황당한 일을 바로 우리가 당한 것이다. 약하니까 강대국들이 우습게 봤다.
약소국의 설움은 아직까지 이어진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살게 됐지만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이 워낙 강대국들이어서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약자다. 영화 속에서 북한 강경파 군부가 득세하자 미국은 선제공격을 하려 한다. 그 결과 한반도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은 무시되고 만다. ‘군사적 옵션’을 너무나 쉽게 입에 올리는 최근 미국의 태도를 보면 개연성 있는 설정이다. 우리의 힘이 부족하니 내 나라에서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는 사안을 다른 나라가 태연히 거론한다.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쳐야 강대국 앞에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 볼 텐데, 대치상황을 이용하려는 남북한의 정치세력들 때문에 힘은 모이지 않는다. 영화는 말한다.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더 국민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이런 상황에서 남과 북의 두 철우는 한반도 내의 핵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식이 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코드는 요즘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소재 중 하나다. 영화는 그런 대중적인 코드를 바탕으로 우리 분단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스토리를 구성했다.
보고 있노라면 모골이 송연하다. 한국인이면 무섭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세기 이상 축적된 북의 정예 군사력이 순식간에 남한으로 전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한 상공에 핵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에겐 남 얘기가 아니다. 영화는 이런 상상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무거운 주제에도 웃음을 잃지 않은 코드
<변호인>을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당시 평범한 연출력에도 운 좋게 좋은 스토리를 만나 성공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변호인>의 완성도는 단지 운이 아니었다. 그런 확신이 들 만큼 <강철비>는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적재적소에 잘 배치된 음악도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연기자들의 앙상블도 훌륭하다. 곽도원은 왜 그가 비교적 평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화에서 중용되는 지를 확실하게 증명했다. 정우성은 모처럼 맞춤옷처럼 딱 어울리는 배역을 맡았다. 전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구멍’이 없는 작품이다. 액션 연출도 기대 이상이다.
그렇게 해서 아주 묵직하고 긴박한 영화가 탄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이다. 민족적 위기의 무게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휘청거리며 압도되지 않았다. 곽도원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통해 웃음, 가벼움을 잃지 않는다. 마블의 전략과도 비슷하다. <어벤져스>의 마블은 아무리 심각한 지구의 위기를 다룰 때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전 지구적인 성공을 거둔 반면 경쟁자인 <슈퍼맨> 시리즈의 DC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했고 관객의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강철비>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DC보단 마블에 가깝다. 그만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과연 영화처럼 남북의 극단 강경파, 분단 상황을 이용하려는 기회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한국을 우습게 보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우리 자존을 찾을 수 있을까? 잠깐이라도 그런 고민을 해볼 수 있다면 <강철비> 관람이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