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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롱패딩이 돌아왔다

요즘 길거리에 나가면 롱패딩을 입은 남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바야흐로 롱패딩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패딩(Padding)은 다운(솜이나 깃털)이나 합성면 등을 채워 넣고 퀼팅으로 누빈 의류를 총칭한다. 쉽게 말해 겉감과 속감 사이에 충전재를 넣은 옷이다. 패딩의 역사를 통해 올겨울 대세 아이템인 롱패딩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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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의 탄생과 진화를 엿보다

패딩은 파카(Parka)에서 유래했다. 파카는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족이 입던 옷으로 요즘 입는 패딩 모양과 거의 흡사하다. 다만, 이누이트족이 입던 파카는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져 무겁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이누이트족의 파카를 1936년 미국의 에디 바우어가 현대적인 패딩으로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포츠용품점의 주인이었던 그는 겨울 낚시 여행 중 저체온증을 겪은 후 이를 계기로 방한용 재킷을 연구하게 된다. 당시의 파카는 충전재가 한쪽으로 쏠려 뭉치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 이를 극복하려고 방법을 찾던 중 에디 바우어는 퀄팅 기법을 찾아냈고 그리하여 최초의 패딩 재킷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측근이나 소수의 스포츠 애호가를 위한 제작에 머물러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1952년 프랑스의 캠핑 장비업체인 몽클레르가 추운 겨울에 공장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을 위해 다운 재킷을 만들어 공급하게 된다. 바로 그 다운재킷이 입소문을 타면서 패딩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한 산악 원정대가 패딩을 착용하게 되면서 기능성 의류로도 주목받게 됐다.
그러다가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에서 프랑스 알파인 스키팀의 유니폼으로 패딩이 제작되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됐고, 이젠 겨울철 필수 아이템으로까지 등극했다.

롱패딩은 진화는 계속 진행 중

롱패딩은 사실 축구, 농구 등 스포츠 선수들의 복장으로 유명했다. 코트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이 벤치에서 대기하는 동안 입고 있다 해서 ‘벤치코트’라 불리기도 했다. 일명 ‘벤치코트’로 통하던 롱패딩이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대학농구의 열기가 뜨겁던 그 시절, 이를 소재로 한 MBC 농구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큰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들이 입었던 벤치코트의 호감도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다. 패션업계에서 1020세대를 겨냥해 기능성은 물론 패션성을 가미한 롱패딩을 하나둘씩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하지만 롱패딩의 인기는 얼마가지 못했다. 유행을 선도하는 주 소비자층인 10대들에게는 당시만 해도 두발 자유가 없었고 복장 규율도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롱패딩의 유행은 지나가버렸다.
유행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롱패딩의 인기가 다시 상승세를 탄 것은 지난해였다. 아웃도어나 스포츠 브랜드가 10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롱패딩을 협찬 및 제공해주거나 이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적극적인 아이돌 마케팅에 나서면서 롱패딩의 수요가 점차 증가하게 된 것. 시기적으로 평창 올림픽을 기념한 평창 롱패딩이 제작되면서 롱패딩의 인기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겨울 롱패딩이 대세라는 것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령에 따라 선호하는 패딩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30대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을, 40~50대는 엉덩이를 살짝 덮는 헤비다운을, 60대 이상은 허리에서 끊어지는 길이의 경량 패딩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나이가 많을수록 패딩 길이가 짧아진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은 완판에 가까운 판매를 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 유난히 추울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스포츠 및 아웃도어 의류업체에서는 기존 롱패딩에서 길이를 더욱 늘리는 등 보온성과 유행을 좇는 스타일을 모두 강화한 제품들을 선보일 전망이다.

일명 ‘벤치코트’로 통하던 롱패딩이 국내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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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문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