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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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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아버지’로 불린
음악의 아버지
바흐

천여 곡이 넘는 작품을 작곡한 클래식 음악의 대부 바흐.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가 쉬지 않고 다작을 할 수 있게 한 영감의 원천은 그의 곁을 매일 지켰던 커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마의 음료’로 불리며 한때 금기시됐던 커피는 예술가들을 매혹시켜 결국 전 세계인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으니, 그 중에 바흐의 공헌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악마의 음료’ 유럽을 강타하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현대 사회인들의 필수적인 기호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쉽게 즐기게 된 대중적인 음료지만, 커피가 보급되기까지는 각 지역별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아랍인들이 즐겨 마셨던 커피가 유럽에 보급된 건 17세기 초의 일이다. 처음에는 아랍인들이 즐겨 마셨다는 이유로 유럽 사회에서 ‘악마의 음료’라고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마셔본 후 이런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이교도만 누리게 할 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커피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커피에 대한 유럽인들의 열렬한 선호는 사회 분위기에 상당히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귀족 중심의 살롱 문화는 열려 있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카페 문화로 자연스럽게 이동됐다. 이러한 가운데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생각을 즐겁게 교환하는 장소로 카페를 애용했다.

바흐는 커피의 아버지?

독일에서 활동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바로크 음악을 완성했다고 평가되는 그의 업적에 대한 이 애칭은 ‘커피의 아버지’라는 표현에도 썩 어울리는 듯하다. 바흐가 활동했던 1700년대 초반에는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지면서 독일에서도 커피 열풍이 불 때였다. 하지만 의사들은 커피를 건강상의 이유로 금지했는데, 특히 여성에게는 불임을 이유로 들어 여성들의 카페 출입을 금기시했다.
다소 차별적인 이유로 커피의 확산을 막았던 당대 사회 분위기가 탐탁지 않았던 바흐는 여기에 살짝 반기를 드는 귀여운 작품을 선보인다. 커피를 끊을 수 없는 여성들의 마음을 담은 ‘커피 칸타타’를 작곡한 것. 당시 바흐는 매주 한 번씩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커피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악단을 지휘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커피를 홍보하기 위한 일종의 광고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렇게 바흐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유머러스하다고 손꼽히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수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한 커피여!

‘커피 칸타타’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피 중독에 걸린 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 사이의 소동을 담고 있는데, 커피에 찬사를 쏟아내는 딸과 커피를 끊으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아버지의 가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곡이다. 아버지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명령하며 딸에게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고, 결국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딸은 자신과 결혼하려면 꼭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조항을 혼인 계약서에 살짝 집어넣으며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곡의 원래 대본은 아버지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었지만, 바흐는 딸이 계속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커피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널리 보급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흐의 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딸과 아버지가 주인공이지만, 당시 커피하우스에 여성이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성 아리아를 남성이 가성으로 불러 역설적인 상황이 자연스레 연출됐다고 한다.
실제로 유럽 사회는 커피의 독점권을 둘러싸고 정부와의 다툼이 팽팽했다고 한다. 커피는 국왕과 궁정 사람들만 마실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권리가 없다는 것. 커피를 생산하는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했던 독일 정부가 커피가 보급됐을 때 생겨날 외화 낭비에 우려했기 때문이다. 바흐는 커피를 둘러싼 탄압에 대한 불만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을 만들어 표현함으로써 커피의 대중화에 힘쓰게 되었다. 본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커피에 대한 이 헌사는 ‘칸타타’라는 양식명이 커피 상호로도 사용되며 커피에 대한 바흐의 애정을 후대에도 길이 각인시키게 되었다.

아, 커피 맛은 정말 기가 막히지
수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달콤하고
머스캣 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지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
아… 내 커피 잔만 가득 채워주면 그만이에요
- 바흐 ‘커피 칸타타’ 리스헨의 아리아 중
컨텐츠 이미지 바흐의 커피 칸타타 음반 사진
컨텐츠 이미지 바흐에게 커피 칸타타 작품을 의뢰했던 라이프치히의 카페 침머만
컨텐츠 이미지 피카소의 커피 메이커(1943)

예술가들을 매혹시킨 커피

커피에 매혹된 예술가들은 바흐 외에도 무궁무진하게 많다. 또 한 명의 거장, 베토벤 또한 지독한 커피 사랑으로 유명한데, 베토벤은 60알을 일일이 세어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고서야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바흐, 베토벤과 함께 ‘3B’로 일컬어지는 브람스 또한 바리스타 기질로 유명했다. 브람스는 누구도 자신만큼 향기가 짙은 커피를 끓일 수 없다며 아무도 자신이 마실 커피를 끓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는 예맨 모카 마타리 커피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한다. “반 고흐를 이해하려면 예맨 모카 마타리를 마셔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프랑스의 아를 지역에 머물며 3일 밤에 걸쳐 자신이 즐겨 찾던 카페의 전경을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전해진다. 카페에서 당대 예술가들과 교류했던 피카소 역시 커피에 대한 애정을 커피 그라인더를 묘사한 작품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악마의 음료’로 불리던 커피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의 흔적을 예술가들이 남긴 예술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커피는 우리의 삶을 다방면으로 풍족하게 해주는 게 아닐까.

나는 아침상에 나의 벗을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커피를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좋을 수 없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나의 원두는 60여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가르쳐준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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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여항(클래식·무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