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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취향의 전쟁

식혜의 달콤함과
수정과의 알싸함,

당신의 선택은? 식혜 VS 수정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서울 메이트> 등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를 따라다니는 리얼리티 예능이 인기다. 만약 당신이 외국인 손님을 맞이해 한 잔의 전통 음료를 내놓는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밥알 동동 식혜의 달콤함인가? 곶감 말랑 수정과의 알싸함인가? 이 군침 당기는 대결의 승자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맛과 멋의 주역인 대표 전통 음료

식혜와 수정과는 오랫동안 우리 다과상의 주연으로 활약해왔다. 대보름 윷판 옆에는 식혜가 있는 게 당연했고, 귀한 손님 상에 수정과는 없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어 골목마다 화려한 메뉴를 자랑하는 커피 전문점이 지키고 있다. 편의점에만 들어가도 수십 종의 음료수를 가득 채운 냉장고가 기다린다. 하지만 식혜와 수정과는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우리 곁에서 맛과 멋의 주역이 되고 있다.
역사로 따지자면 식혜가 대선배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보면 신라가 가야를 합병한 후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감주(甘酒)가 제물로 등장한다. 식혜의 기본은 밥을 엿기름으로 삭혀 달콤한 맛을 내는 것인데, 지역에 따라 감주로 부르기도 한다. 혹은 제조 과정에서 갈라지기도 한다. 밥을 엿기름 물에 삭힌 뒤 진액을 밥알과 함께 가열한 것을 감주, 밥알을 건진 뒤 남은 액체에 설탕, 꿀을 더해 맛을 낸 뒤 밥알을 띄운 것을 식혜라고 하는 식이다. 어쨌든 그 전통은 천오백 년에 이른다.
수정과는 계피, 생강을 달인 물에 설탕, 꿀을 타서 달게 만들고 곶감, 잣을 더한 음료다. 조선 영·정조 때의 문헌에 처음 나오는데, 재료에 배, 꿀, 후추 등이 들어간다는 걸로 보아 현재와는 제조법에 차이가 있다.

식혜
vs
수정과

맛은 물론 건강에도 좋은 식혜와 수정과

두 음료는 맛은 물론 건강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해왔다. 식혜의 주성분인 엿기름에는 당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명절이나 잔치 등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을 때는 꼭 식혜를 후식으로 마셔 소화를 돕게 했다. 수정과는 재료 자체가 약리 성분을 고려하고 있다. 한겨울 푹 무른 곶감에 잣을 띄워낸 수정과는 속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한다. 생강은 몸을 데우는 효과가 있고 찬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내 위를 튼튼하게 한다. 계피 역시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곶감에는 철분과 비타민C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
훌륭한 음료는 눈으로 한 번 마시고, 입으로 한 번 더 마신다고 한다. 식혜는 따뜻한 매력이 있다. 그냥 깔끔하게 건더기 없이 마시기도 하지만, 약간의 밥알을 더해 먹으면 영양을 보충하는 기분을 얻기도 한다. 수정과는 곶감과 계피를 중심으로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낸다. 특히 놋그릇에 담아내면 깊이에 따라 은은한 색채가 달라지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잣을 올린 이유는 찬 음료를 천천히 마시게 하려는 뜻이라고 하지만 고급스러운 장식의 의미도 크다.

다양한 맛으로의 진화

기본적인 식혜는 색과 맛이 무난한 편이라 호박 식혜, 구절초 식혜 등 다양한 재료를 더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안동 식혜는 아주 특이한데, 빛깔은 나박김치 같지만 걸쭉하고 톡 쏘는 맛이 있다. 찹쌀을 찜통에 쪄 찰밥을 만들고 여기에 고춧가루, 무채, 밤채, 생강채를 넣고 엿기름을 따라 부은 뒤 발효시킨다. 수정과는 강한 색과 맛을 베이스로 하고 있어 변형이 많지는 않다. 요즘은 가볍게 곶감 조각을 넣고 잣을 띄우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곶감 하나를 오롯이 넣은 곶감 수정과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가련수정과(假蓮水正果)는 오미자를 우려낸 물에 단맛을 더한 뒤 연꽃의 속잎을 띄워먹는다.
현대 음료시장에서는 아무래도 식혜가 더 큰 대중성을 얻고 있다. 아이들은 생강 맛에 익숙하지 않아 수정과보다는 식혜를 택한다. 식혜는 뜨거운 찜질방에서 땀을 잔뜩 흘리고 난 뒤에 마시는 음료로도 인기가 있다. 반면 수정과는 ‘어른의 음료’다. 고상한 한옥 카페에서 어른들끼리 멋을 낼 때 더욱 어울리는 존재다.

글. 이명석(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