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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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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
전설의
야구 기록을
만들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대식가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베이브 루스는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수많은 야구팬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는 최고의 홈런타자이다. 뛰어난 실력 못지않게 어리고 약한 아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표시했던 베이브 루스를 만나 본다.

영원한 홈런 왕 베이브 루스

모든 구기 종목 중에서 야구는 아주 눈에 띄는 특이한 룰을 인정하고 있다. 축구나 배구, 농구, 테니스 경기 등은 한결같이 경기장 밖으로 공이 나가는 것을 반칙으로 정해 엄격히 금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야구만큼은 홈런이란 이름으로 투수가 던진 공이 관중석 밖으로 더 멀리 나갈수록 열광하고 환호하도록 하고 있다. 1920년대 무렵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했던 베이브 루스는 지금까지도 전설의 홈런타자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는 수많은 홈런을 쏘아 올리면서 야구를 투수 중심에서 타격 중심의 스포츠로 변화시켰다. 또한 단순한 홈런 타자를 넘어서서 경제대공황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며, 놀라운 타격 능력으로 야구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뻗어 나가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주었다.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한 베이브 루스는 신인시절에도 188㎝, 98㎏의 월등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수 초반시절 투수로 활약했던 그는 1915년 18승, 1916년과 1917년에는 각각 12승과 13승을 올렸다. 1918년이 되면서 그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해서 투수로서는 18승을 거둠과 동시에 타자로서도 11개의 홈런을 치며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으로 등극한다. 이뿐 아니라 1919년에는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후 29개의 홈런을 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시 그의 동료들이 겨우 홈런 10~15개 정도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활약을 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베이브 루스는 1945년 친정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메이저리그를 은퇴할 때까지 타자로서 통산 714홈런, 2,212타점, 투수로서 통산 94승 46패라는 믿기 힘든 성적을 올렸으며 11번의 걸쳐 홈런왕 타이들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러나 영원한 홈런타자인 베이브 루스 역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수없이 많은 아픔과 시련을 겪어야 했다. 유년 시절의 가난과 고아원 생활,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인종차별, 이혼, 극성스런 상대팀 팬들의 치욕에 가까운 비난과 놀림 등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순진하고 마음 좋은 홈런왕의 이미지를 버리지 않고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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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의 싸인이 담긴 사진

뉴욕 쿠퍼스 타운 야구 명예의 전당에 처음으로 입회한 다섯 명
(왼쪽 하단이 베이브 루스)

어린이를 사랑한 순진하고 아름다운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본명은 조저 허먼 루스이다. 독일계 이민자였던 그의 부모님은 부둣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술집을 운영했다. 당연히 생활은 어려웠고 베이브 루스는 다섯 살 무렵부터 씹는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닐 정도로 갖은 말썽을 피우며 자라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13살에 돌아가시면서 그는 아버지 손에 의해 세인트 매리 보육원에 맡겨졌다.
거칠고 배고픈 고아원 생활 동안 그는 온갖 말썽을 다 부리며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 동안 어려움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잃지 않으며 지내게 되었다.

평생 말썽쟁이로만 살 것 같았던 베이브 루스는 세인트 매리 보육원에서 마티아스 신부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스스로 야구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191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이너리그에 입문하며 본격적인 프로 야구 선수로 활약한다.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말도 많았으며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그는 이때부터 조저 허먼 루스라는 본명 대신 ‘어린아이처럼 순진하다’는 의미를 지닌 베이브 루스로 불리게 된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하는 내내 병원이나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어린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1926년 베이브 루스가 월드 시리즈를 앞두고 있을 무렵 말을 타다 떨어져 중상을 입은 열한 살짜리 소년 자니 실베스터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베이브 루스는 월드 시리즈를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실베스터를 찾아가 자신은 물론 함께 뛰는 선수들의 사인볼을 건네주며 소년을 위해 홈런을 치겠다고 약속을 했다. 베이브 루스의 약속을 들은 소년 또한 그가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면 병상에서 꼭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의사들은 실베스터가 워낙 심하게 다친 상황이라 베이브 루스가 홈런을 친다 해도 병상에서 선뜻 일어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시합에서 베이브 루스는 네 개의 홈런을 소년에게 선물했고 병원의 걱정과 달리 실베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씩씩한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은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1945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친 그는 1948년 후두암 판정을 받은 뒤 안타깝게도 53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15만 명이 넘는 인파가 찾아왔으며 놀랍게도 절반이 그가 유달리 사랑했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 유일한 스포츠는 야구다”라는 말을 남긴 베이브 루스는 지금도 전설의 홈런 타자로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다.

글. 이원복(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