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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SPECIAL

아주 사소한 인문학

HOPE, LOVE

사랑과
희망의 언어,나눔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사랑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그 누군가에게는 상상만으로 접어야 했던 꿈들이 새록새록 채색되어 간다. 세상에 스며든 나눔은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다.

함께, 우리가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나와 소꿉친구들은 은밀한 계획을 도모했다. 매일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놀기만 했던 우리들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왠지 모르게 어른스럽게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학교에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떠들다가 꾸중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모두들 스스로를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 중학교 1학년의 시절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인가 좋은 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1980년대 초반, 읍 소재지의 시골 중학교에 다니던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여름이면 개울가와 동네 뒷산에서, 겨울에는 썰매를 타거나 연싸움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 읍에는 영화관도 없었고, 서울에 있는 놀이공원은 수학여행 때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멋진 추억을 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초,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던 우리들은 유독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한 친구의 솜씨에 입을 모아 칭찬했다. 산타할아버지의 수염을 솜으로 장식하거나, 선물주머니가 튀어나오도록 오려 붙여 만든 팝업카드는 신기하기만 했다. 모두들 이런 카드는 문방구에서 팔아도 손색이 없다는 말에, “그럼 한번 판매해볼까? 그런데 그 수익금으로 무엇을 하지?”라는 친구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날 이후 소꿉친구들끼리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던 작은 일이 여러 사람에게 퍼져나가 생각하지 못한 큰 일이 되고 말았다. 친구의 친구가 함께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고, 그림을 잘 그리는 선배들이 직접 카드를 만들어줘 힘을 보태주었다. 솜씨가 좋은 친구들은 카드를 만들었고, 성격이 쾌활한 언니오빠들은 주변사람들에게 직접 홍보를 해주기도 했다. 우리들은 교무실 복도 벽에 줄을 달아 카드를 전시해놓고, 그 옆에 작은 상자도 하나 마련해두었다. 카드 값은 정해지지 않은 채, 구입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넣도록 했다.

함께

자연스럽게,
배우다

우리가 보육원을 방문하게 된 것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정성으로 모은 금액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카드 전시대가 놓여있는 벽면에 붙여진, 우리가 살고 있는 읍과 이웃한 면에 위치한 보육원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발견했다. 주로 아기들과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그곳에서 하루 동안 신나게 놀아줬으면 좋겠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다. 우리들은 만장일치로 보육원에 갈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갔다. 방학식날 판매금액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우리들은 정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백 원짜리 동전은 물론 천 원과 오천 원, 심지어는 몇 장의 만 원 지폐도 들어 있었다. 지금 그 때의금 액이 정확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이 접하기에 꽤 많은 돈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탄절에 시간이 되는 친구들은 모두 모여 버스를 타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모인 금액으로 공책과 스케치북, 크레파스 등의 학용품과 과자도 골고루 샀다.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시던 부모님들께서 해주신 백설기 떡까지 더해지니 버스 안이 큼직한 박스들로 가득 찼다. 사실 보육원에 도착해서 우리들이 한 것은 정말로 아이들과 신나게 놀기만 한 것밖에 없었다. 그 당시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굳이 거창하게 나눔이라든가, 혹은 봉사나 기부라는 방식들을 떠올리며 생활하지 않았다. 사정이 생겨 갑자기 소득이 없게 된 건넛집 아저씨가 무안해 할까 봐 아무도 보지 않는 인적이 드문 늦은 밤에 대문 앞에 조용히 쌀자루를 놓고 오시는 부모님을 잠결에 보게 된 적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집만의 특별한 행보가 아니라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우리 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큰 맘 먹고 남에게 베푸는 일이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를 맺는 마음의 성숙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와 소꿉친구들은 그것을 부모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나눔

삶과 나눔,
보다 행복한 세상을 향해

언제부터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나눔문화’와 같은 말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물론 사회 공헌을 실천한 지식인들과 기업인들도 적지 않지만, 때로는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 절제되지 못한 언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윤리적인 삶의 태도는 커녕 단지 이윤 추구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몇몇 유명인들을 보면, 욕심이 끝이 없는 그들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나눔은 결코 희생의 반의어가 아니다. 아시아 최고의 기부 영웅으로 알려진 배우 성룡은 자신의 재산 절반을 기부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기부단체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잊지 않고 유명인이 된 이후 꾸준히 자선단체에 나눔을 실천한다. 한편 ‘죽을 때 은행 잔고가 0이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영국에서 출발한 ‘레거시 10(Legacy 10)’ 캠페인은 모든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자녀에게 물려주는 유산의 10%를 자선과 문화 사업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유언장에 남기는 유산기부 서약 캠페인으로, 많은 사회 지도층과 기업인들이 동참하고 있다. 또한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세계의 재벌들이 자신이 살아 있을 때 혹은 사후에 재산 중 50%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서명하는 운동이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재산의 95%를, 그리고 워렌 버핏은 99%를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고 전해진다.
나눔의 가치는 결코 크기나 규모에 있지 않다. 같이 마음을 나누는 사랑과 배려가 동반된다면, 함께하는 행복은 언제 어디서나 소중할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남과 더불어 생활할 때 더욱 아름답다. 이제는 그러한 기본적인 사랑과 희망의 언어를 부모들이, 어른들이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행복
글. 엄익순(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