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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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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보다
뮤지션을 꿈꿨던
비틀즈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비틀즈만큼 많이 달 수 있는 이들이 또 있을까? 이 전설적인 밴드는 세상에 없던 자신들만의 음악을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더벅머리 4인조 밴드가 음악사를 뒤바꾼 존재로 성장하기까지 그들의 뜨거웠던 음악 이야기를 살펴보자.

비틀즈답게 만든 재기발랄한 음악

“어린 시절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라고 이야기했던 이는 존 레넌 뿐만 아니다. 나머지 세 멤버 또한 다른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엘비스에 열광했고 그를 보며 자연스레 로큰롤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존 레넌이 16살, 폴 매카트니가 14살이던 어느 날 둘은 교회 축제에서 처음 만났다. 존 레넌의 말대로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렇게 폴 매카트니는 존이 속한 고교 밴드 쿼리멘에 합류했다. 존과 폴은 학창시절 언제나 붙어 다니며 기타 코드를 연습했고, 오랜 시간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비틀즈의 첫 싱글 앨범 <Love Me Do> 또한 쿼리멘 활동 당시에 만든 노래다. 쿼리멘 시절, 함부르크 시절을 지나 1963년 이들은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모여 ‘비틀즈(The Beatles)’라는 완전체가 됐다.
싱글 앨범 <Please, Please Me>가 처음으로 1위 곡이 되면서 리버풀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비틀즈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바쁜 순간에도 음악 작업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공연했던 터라 이들은 주로 호텔에서나 이동 중에 존과 폴이 기타를 치며 새 노래를 만들었다.
‘She Loves You’ 또한 요크셔의 기차에서 완성했다. 처음에는 멤버 각각이 나름의 코드와 음을 만들며 곡을 만들다 다른 멤버가 만들고 있는 노래를 들으며 좋은 부분을 함께 발전시켜나갔다.
멤버 전원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연주까지 해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비틀즈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을 음악으로 표출했다. 젊고 풋풋한 청춘의 에너지로 충만했던 비틀즈. 노래 또한 재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쳤다. 직접 만든 음악은 자유로운 비틀즈 그 자체였다. 이는 노래 가사만 봐도 잘 드러난다. ‘네 손을 잡고 싶어(I Want To Hold Your Hand)’, ‘날 사랑해줘(Love Me Do)’처럼 솔직하고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사랑 표현이었다. 이처럼 비틀즈는 도덕적 기준이나 틀에 자신들을 가두지 않고 느낀 대로 표현하며, 가장 비틀즈답게 노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를 평정한 비틀즈

“비틀즈 시간으로 오전 6시 30분입니다. 그들은 30분 전에 런던을 떠났습니다. 뉴욕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오고 있군요. 비틀즈 주변의 온도는 32도입니다.”
이는 1964년 2월 7일 비틀즈를 태운 비행기가 런던 공항을 출발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 일거수일투족 생중계한 미국 WMCA 방송의 한 장면이다. 영국을 사로잡은 비틀즈는 다른 나라 뮤지션들에게는 넘기 힘든 빌보드를 점령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당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다. 한 주 전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열창한 라이브 공연은 약 7,000만 명이 시청했고 6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영국에서 온 4인조 밴드가 음악으로 세상을 평정한 순간이었다. 이 기록은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 뽑은 ‘20세기 록 음악계의 역사적인 100가지 사건’ 중 1위로 기록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1964년에는 ‘빌보드 차트 톱5’를 휩쓴 최초의 그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 비틀즈의 성공은 영국 로큰롤 밴드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또 다른 영국 밴드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같은 영국 록밴드들이 미국 차트를 점령하며 승승장구하던 시기를 평론가들은 영국 침공,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이라 부른다. 비틀즈는 레코드와 악보출판 등의 판매량이 영국 총 수출액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해 1965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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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컨텐츠 이미지 1963년 8월 <월간 비틀즈> 팬북 1호 발행
  • 컨텐츠 이미지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이자, 앨범 커버를 촬영했던 영국 런던의 애비로드

음악적 실험으로 남긴 위대한 유산

음악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비틀즈. 슈퍼스타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1966년 8월 미국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투어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멤버들은 스튜디오에서 음악적 실험에 나섰다. 전혀 써보지 않았던 악기들을 사용했고 전자 음향까지 도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음반이 바로 <Revolver>다. 이 음반은 시대의 가장 혁신적인 록 음반으로 기록됐고, 로마 교황청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팝 앨범으로 선정했다. 멤버들의 실험 정신으로 탄생한 앨범들은 현대 음악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써 내려갔다. 그들의 음악적 실험과 예술적 감각은 이후 50년이 넘도록 후배 음악가들에게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멤버들이 성숙한 것처럼 음악 또한 변화했다. 직설적 사랑 노래들은 반문화, 정치적 견해, 어린 시절의 기억 등에 자리를 내줬다. 이는 “모든 것이 바뀌고 있었다. 초창기 곡들은 팬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지점에 도달했다”라고 이야기한 폴 매카트니의 이야기에도 잘 드러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비틀즈에게도 마지막 순간은 찾아왔다. 그들은 1970년에 발매한 앨범 <Let It Be>를 마지막으로 비틀즈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Let It Be>를 제작할 때 각자 파트만 따로 녹음했을 정도로 관계는 멀어졌다고. 멤버들은 비틀즈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삶을 살고자 해체를 선언했다.
혹자는 ‘비틀즈는 천재였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천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재이기 전에 그들은 지독한 연습 벌레였고, 또 열정적인 실험가였다. 음악을 좋아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흔일곱의 폴 매카트니는 며칠 전 신곡을 발표하며 또 한 번 전 세계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위대한 밴드 비틀즈의 음악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 정임경(자유기고가)
참고 도서. <THE BEAT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