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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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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너머
오롯한 나로 살기
프리드리히 니체

20세기를 연 문제적인 철학자, 혁명의 철학자 등은 프리드리히 니체를 수식하는 말이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으로 2000년 서양 철학의 근간인 플라톤주의를 전복시킨 철학자 니체는 타인의 생각이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생각과 경험으로 새로운 사상을 펼쳤다. 19세기 가장 용감하고 대담했다고 평가되는 철학자 니체를 만나 본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선글라스와 가면

선글라스를 끼고 나무 아래를 걸으며 니체를 떠올린 시인 장석주. 그는 저서 <철학자의 사물들>에서 “니체는 무엇보다도 가면의 철학자다. 가면이 가리는 것은 얼굴이 아니다. 가면은 ‘나’의 내면으로 가는 타자의 시선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실제로 니체는 자신을 다이너마이트, 광대, 여행자라고 불렀고, 이러한 가면을 쓰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삶을 탐험했다.
그러고 보면 표정, 생각, 마음 상태 등의 노출을 막는 가면은 오늘날의 선글라스를 닮았다. 장석주 시인 또한 “선글라스는 일종의 가면이다.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자는 그 뒤로 숨는다. 선글라스는 눈빛과 눈동자를 그리고 내면 심리를 가린다. 선글라스를 끼고 난 뒤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타자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니체는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철학자이자 ‘지배하는 것은 본능이며, 민주주의는 나쁜 것이다’ 등 동시대 사람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을 주장한 반시대적 철학자였다. 니체가 가면을 쓴 것 또한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늘 낡은 것을 재평가하고 해체하고자 했던 니체. 그의 별명이 ‘망치든 철학자’인 이유 또한 당시 오랫동안 주를 이뤄온 관념론적, 기독교적 도덕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치를 세우기 위해 기존의 것을 깨어 부수는 망치를 닮았기 때문이다.

‘절대 가치는 없다’고 선언한 니체

자신을 다이너마이트라고 이야기할 만큼, 스스로 파과자임을 자처할 만큼 니체가 그토록 깨부수고 싶어 했던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당시 유럽의 역사, 문명, 철학, 예술 및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들이었다. 세계의 본질을 이성과 정신으로 설명하려 했던 플라톤 철학과 그 기반 위에 만들어진 기독교 세계관, 도덕 등 사람들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절대 가치’와 ‘절대 도덕’을 재평가하려 했다.
유럽인의 삶은 무려 2000년 동안 ‘신’이라는 절대 가치에 영향을 받았다. 신은 거부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 신성한 가치는 인간에게 곧 삶의 의미요 방향이자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줄 절대자였다. 니체는 이러한 신의 존재와 능력에 의구심을 가졌고, 마침내 저서 <즐거운 학문>에서 ‘신은 죽었다’와 같이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해 세상에 큰 충격과 혼란을 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신이 죽은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으로 ‘내가 신이 되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신이 다스린다는 하늘의 세계가 참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보고 듣고 느끼는 땅의 세계가 진짜 세계가 되는 것, 지금까지 신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오롯이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인간, 바로 그 유명한 ‘초인’을 탄생시켰다.
초인은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인간으로 신과 하늘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고, 자신이 사는 땅의 세계와 자신 안의 가치에 충실한 사람을 말한다. 니체의 초인 철학은 수많은 유럽인, 사상가들, 히틀러까지도 매료시켰다.
니체가 정신병원에서 집필한 마지막 책 <권력에의 의지> 중 “권력은 힘이요, 힘은 곧 우월함의 상징이기에 권력의지는 인간이 갖고 싶어 하는 가장 깊은 열망이다.”는 문장이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나치 사상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에 이르러서까지 니체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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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에 위치한 질스마리아는 니체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준 장소로 유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다.

타인의 삶이 아닌 가장 나다운 삶을 꿈꾸고 증명해야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 도덕, 가치 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해서일까.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대가 낳은 오래된 가치와 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법적인 제제를 피하기 위함이기도 하나, 이미 너무도 익숙하게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서 강요받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20여 년 전, 니체가 그토록 부르짖던 “타인이 만든 가치에서 빠져나와 삶을 옭아매는 모든 것을 낡은 가치로 규정하며 당신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여전히 현대인의 가슴에 불씨가 되는 것 또한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만의 삶의 기준, 나만의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정신질환을 앓는 비극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기 생각과 사상을 펼친 니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답게 사는 법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고독하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 세상의 시선과 편견에 맞서고 고정관념을 깼던 니체의 삶은 극복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신에 기대거나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인생의 주체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삶과 철학을 통해 온몸으로 이를 증명했다.
타인의 삶이 아닌 나 본인의 삶을 살고 싶은가. “너 자신이 되어라.”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나의 사랑과 희망을 걸고 간청하노니 네 영혼 속에 있는 영웅들을 몰아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니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아니, 바로 지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닌 끌어가는 삶이 주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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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임경(자유기고가)
일러스트. 이신혜
참고 도서. <철학자의 사물들>, <니체 세상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