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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SPECIAL

아주 사소한 인문학

인생의 파도를
넘을 때

추억의 마법이
당신을 지켜준다

새로움에 대한 홍수로 마음이 불안해지는 시대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시절을 떠올려보자. 과거의 향수는 미래로 향하는 험난한 여정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줄 것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기억의 방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향수

지난날의
기억과 향수

지난주 일요일은 작년 여름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첫 제삿날이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열무김치를 담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곧바로 병원에 모셨지만, 의사선생님께서는 ‘편하게 가실 수 있게 하자’는 말씀을 하셨다. 어떻게든 수술이라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편안하게 주무시는 듯한 모습의 어머니는 3일 후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장례가 치러지는 내내 우리 가족들은 울지 못했다. 홀로 남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먼 길을 떠나신 시각은 정확히 새벽 4시 30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우리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은 평소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동네 뒷산으로 매일 운동을 나가시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어머니 앞에 모였다. 아들 둘과 며느리들, 딸과 사위, 손자 손녀들이 한 명씩 누워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얼굴을 어루만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품에 안자 어머니는 미소를 지은 채 떠나셨다.
항상 자식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부엌에서 우리들은 제사음식을 차렸다. 고기를 좋아하셨지만 건강을 염려하여 마음껏 드시지 못한 어머니께 두툼한 산적을 겹겹이 쌓았고, 과일 중에서 가장 맛있게 드신 거봉은 특히나 알이 큼직한 것으로 올렸다. 찬장을 열어 그릇을 꺼낼 때마다, 그 그릇에 담겨 있던 솜씨 좋은 어머니의 음식들이 떠올랐다. 기다란 나무 밀대가 눈에 띄자, 그것으로 반죽을 얇게 펴 조갯살을 듬뿍 넣고 채 썬 호박을 볶아 고명으로 얹은 어머니의 손칼국수가 그리워졌다. 제기 위에 놓인 조기를 가리키며 손자 손녀들은 조기 비늘을 칼등으로 득득 긁던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머니의 음식은 가족의 사랑과 지난 시절의 그리움이 담긴 아름다운 추억을 품고 있었다.

추억

과거와 미래는
추억으로 연결된다

이제 한 달 후면, 우리 가족은 40여 년을 살아온 시골집과 이별한다. 손수 설계를 하고 벽돌을 쌓으셨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도 시골집에서 홀로 생활하고자 하셨다.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들이 함께 살기를 청했지만 매번 거절하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시골집에서의 생활은 아버지를 점점 더 힘들게 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백합이 만개했던 6월, 마당 한가득 꽃향기로 물든 화단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렇게 일 년여가 흐른 올해 여름, 아버지는 시골집을 팔기로 결정하셨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멀리 살고 있는 자식들이 아니라, 이제는 오십 중반을 훌쩍 넘어버린 제자들이었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는 물론 삼우제를 마친 다음 날부터 이웃한 면 소재지에 살고 있는 제자들이 교대로 아버지를 뵈러 왔다. 보건소에 다니는 제자는 아버지의 건강을 살폈고, 농사를 짓고 있는 어느 제자는 점심때가 되면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리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도시에서의 교편생활을 접고 시골학교로 부임한 첫 해에 가르쳤던 제자들이다. 6학년 언니오빠들이었던 그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30명도 넘는 언니오빠들이 우리집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신 듯하다가 곧 환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하셨다. 그리고는 황급히 시내로 나가셔서 장을 봐오셨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어린 학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돼지고기 볶음을 내놓으셨다. 과자도 한보따리 풀어놓으셨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어린 손님들을 극진하게 대접하셨다. 오히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선생님을 만나러 온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셨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신나게 놀던 언니오빠들이 깜박 잊은 것이 있다며 어머니께 양동이를 건넸다. 뚜껑을 열자, 수십 마리의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오빠들은 도망가는 개구리를 한손에 움켜쥐고는 어머니께 말했다. “저희들이 선생님댁에 오려고 어제 하루 종일 산속 바위틈에서 잡은 거예요. 이건 보통 개구리가 아니라, 보약이거든요.” 그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어린 제자들이 선물한 개구리를 구경하느라 정신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미래

아름다운
여정을 위한 길

어른이 된 그 장난꾸러기 제자들이 이제는 아버지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모시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8월 중순이 되면 그 마을로 이사를 가신다. 제자들은 어린 시절 아무 예고 없이 우리집을 찾아왔을 때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밥상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추억 때문에 제자들은 한결같이 홀로 계신 선생님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버지 곁에서 말동무가 되어 드리겠다면서 우리 자식들에게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 마루에 앉으셔서 나와 오빠들의 연필을 예쁘게 손수 다듬어주셨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씀은 없으셨지만, 뭉툭해진 연필심을 보며 흐뭇해하실 어머니를 떠올리면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었다고 오빠들은 그때를 회상했다. 바느질 솜씨도 좋으셨던 어머니는 화사한 꽃무늬 천을 떠다 나의 원피스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곧 있을 아버지의 이사를 준비하기 위해 집안을 정리하던 우리 가족은 부엌에서, 방에서, 마당에서, 대문 밖 길모퉁이에서도 어머니의 잊을 수 없는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키르케고르는 ‘자기만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진 사람보다 더 부유하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거친 바람을 만날 때,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아름다운 추억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풍경의 진실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족과 아버지 제자들의 마음에 간직되어 있는 기억의 향수가 아픈 현재를 보듬어 주듯이 말이다. 부모가 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로의 터널이 두렵지 않도록 행복한 기억들의 씨를 뿌려야겠다.

글. 엄익순(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