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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길에서 만난 풍경

선조들의
혜안을 따라

담양과 해남의
원림을 가다

어딜 가나 덥다는 말뿐이다. 할 수 있는 건 차가운 음료를 들이키든 에어컨을 켜든 할 뿐이다.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무더위지만, 어찌 과거라 하여 여름이 덥지 않았겠는가. 자연과 함께 오로지 부채 하나로 여름을 보낸 선조들의 혜안에 감탄하지만 말고 이번 여름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원림에서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 제월당에는 별서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흙과 돌로 쌓인 낮은 담장에는 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고자 했던 선비 정신이 담겼다.

선비들의 사유의 공간, 소쇄원

창덕궁 후원이 궁궐의 호화로운 원림이라면 소쇄원은 자연을 중심으로 소박하고 개인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민간 원림이다. 정원이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자연 상태를 그대로 살리면서 적절한 곳에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이 원림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민간 원림이자 자연미와 예술미를 보여주는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자연문화유산도 뛰어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사실 소쇄원은 양산보가 그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유배를 떠난 후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의 자연 속에서 숨어 살기 위해 꾸민 별서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해 은거하기 위한 곳으로, 주된 일상을 위한 저택에서 떨어져 산수가 빼어난 장소에 지은 별장을 의미한다. 소쇄원이라는 이름도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안에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소쇄원은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월당, 광풍각, 애양단, 대봉대 등 10여 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계곡을 흐르는 청명한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계곡을 이용한 석축과 담장의 조화로움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소쇄원의 모든 곳은 인근 마을로 이어지거나 다시 소쇄원의 출입구로 되돌아오게 돼 있다. 흙과 돌로 쌓인 담장 위에는 기와가 덮여 방어를 위한 폐쇄적 기능이 아닌 단순히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기를 원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각이 담긴 것으로, 김인후, 송순, 정철, 송시열, 기대승 등 당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식인들이 이곳에서 여유를 즐기고 이상을 토로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3만여 평에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대나무골은 한여름에도 산책하기가 좋다.

시원한 바람이 대나무를 타고 흐르는, 대나무골 테마공원

담양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많은 것이 대나무일 테지만 사람의 키보다 10배가 넘는 키큰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조금 특별하다. 아름다운 대나무 숲을 만들기 위해 죽순조차 채취한 적이 없을 정도로 3만여 평의 공간에는 대나무가 가득하다. 굳이 ‘국내 최대의 대나무 군락지’라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인공적인 요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연미가 죽녹원과는 다른 경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적으로 태생된 공간이 아닌, 자연을 사랑한 사진작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 탄생한 곳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속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유명세를 치른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한여름에도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대나무 숲을 천천히 걷다보면 세 개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고 한 시간 정도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대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 숲길을 거닐다 보면 소나무 숲길로 자연스레 이어져 송림욕도 즐길 수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죽순이 여기저기서 눈꺼풀을 뜨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봄이면 치솟는 죽순이 장관을 이루고 텃새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곳이기도 하다.

세연정은 문을 모두 걸어두면 사방이 뚫린 정자가 되어 주변의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윤선도의 무릉도원 보길도

1637년 의병을 모아 강화도로 진격하던 고산 윤선도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을 선언하자 통분하며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다시는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풍랑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문 보길도에 반한 나머지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고산 윤선도는 다른 신하들이 광해군의 눈치를 살피며 입바른 소리만 해대던 것과 달리 대북파 이이첨 일파의 불의를 비난하는 상소를 거침없이 올리던 선비였다. 곧은 뜻을 꺾지 않고 직신(直臣)의 정신을 지켜 상소를 올린 탓에 관직에 있던 시간보다 귀양살이를 겪은 고초의 시간이 더 길었다.
풍랑을 피한 뒤에도 윤선도는 제주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길도를 조선 최대의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하고 피어오르는 연꽃을 닮은 골짜기가 마음에 들어 부용동(芙蓉洞)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연정(洗然亭)이라는 원림과, 낙서재(樂書齎), 동천석실(同天石室) 등 모두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짓고 13년의 여생을 보길도에서 보냈다. 특히 주변 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세연정은 5년이나 걸릴 정도로 울에 구들 모양의 판석으로 보를 막아 못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으로 조성했다.
세연정은 윤선도가 자신을 방문한 사람들과 함께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며 풍류를 즐긴 곳이다.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창호와 마루를 둘러 문을 모두 걸어 두면 사방이 뚫린 정자가 되어 주변의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물을 담아 두기 위해 설치해 놓은 판석보에 세연지에서 넘친 물이 흘러 마치 폭포처럼 보인다.
세연정 만큼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동천석실이다.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를 만든 윤선도는 이곳에서 석간수를 모아 연못을 조성하고 집을 지어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어부사시사> 40수와 32편의 시를 지었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사는 곳, 석실(石室)은 돌로 만든 방을 뜻한다. 스스로를 신선이라고 불렀던 셈이다.

  • 부용동이 내려다 보이는 동천석실 전경. 윤선도는 이곳에서 <어부사시사> 40수와 32편의 시를 지었다.
  • 예작도를 품고 있는 듯한 예송리 갯돌해변 전경.

예쁜 조약돌이 파도에 부딪혀 노래하는 예송리 해수욕장

고산 윤선도로 인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보길도는 2008년 휴양하기 좋은 섬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섬에서 가장 제일을 꼽으라면 이름처럼 예쁜 예송리 해수욕장을 추천한다. 갯돌 해변으로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 작고 새까만 갯돌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마치 음악과도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모래 없는 작은 자갈이 1.4㎞나 펼쳐져 있다. 한겨울에도 햇볕에 달궈져 맨발로 걸으면 따뜻한 감촉이 좋고 봄, 가을에는 자갈에 누워 하늘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해수욕장 옆에는 상록수림이 펼쳐져 있는데 길이 740m, 폭 30m의 반달모양으로 300년 전 동남풍을 막기 위해 조성됐다. 천연기념물 40호에 어울리는 멋을 지녔고, 수백 년 된 팽나무, 측백나무, 후박나무들이 빽빽한 숲을 이뤄 거센 바람이나 태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생태탐방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더위를 식히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글·사진. 최승희(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