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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혹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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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 틀고 자면
정말 생명이 위험해질까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날은 더운데 선풍기를 틀고 잘 것인가 끄고 잘 것인가. 튼다면 창문은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이유는 하나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을지도 몰라’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여름밤, 선풍기는 죄가 없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선풍기 사망설에는 으레 따라다니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하나는 강하고 빠르게 부는 바람이 얼굴, 특히 코와 입에 직접적으로 닿으면 호흡이 어려워 저산소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즉 질식사를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따라다니는 과학적인(?) 근거를 떠올려보면 이 방법도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선풍기를 밤새 틀어놓으면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에 빠지고 결국 사망한다는 괴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들은 단순한 괴담일 뿐. 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선풍기를 틀고 잔다고 해서 생명을 잃을 위험에 빠지지는 않는다. 선풍기의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해본다.

반론1. 나뭇잎 흔들 정도의 바람에 질식사?

먼저 선풍기 바람이 코와 입을 막아 질식사를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선풍기 바람의 속도는 미풍일 때 초속 약 3~4m, 강풍일 때 초속 7~8m 정도 된다. 이 정도 세기는 나뭇잎을 흔드는 수준이다. 아무리 밀폐된 공간이라도 이렇게 세기가 약한 바람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혹시 선풍기 바람이 공기 흐름에 영향을 주어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원활한 산소공급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의학적으로 저산소증이란 동맥을 흐르고 있는 혈류에 산소 포화 농도가 90% 이하일 때를 말한다. 즉, 혈관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니는 산소의 양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수 분간 산소가 부족하면 심장이나 간, 뇌 등 주요 기관에 산소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물질대사를 방해하고 괴사를 일으킬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저산소증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산화탄소 등 가스가 많아져 산소가 부족하거나, 빈혈 등의 질병으로 혈류가 산소를 정상적으로 옮기지 못할 때, 폐기종이나 폐부종 등과 같은 폐질환이 있을 때 나타난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저산소증이 나타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로 과거 한 방송사 뉴스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얼굴 주변의 산소 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한 결과, 보통 공기 중과 마찬가지로 약 21%로 나타났다. 참고로 대기 중 산소 농도가 19% 이하로 떨어지면 위험하다.

심각한 저산소증은 밀폐된 공간에서 일산화탄소 등 가스가 많아져 산소가 부족하거나,
빈혈 등의 질병으로 혈류가 산소를 정상적으로 옮기지 못할 때,
폐기종이나 폐부종 등과 같은 폐질환이 있을 때 나타난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저산소증이 나타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반론2. 선풍기 바람이 체온을 떨어뜨려 죽는다?

이번에는 선풍기 바람으로 인해 저체온증이 생길 수 있는지 알아보자. 저체온증은 의학적으로 인체의 중심체온(심장에서 흐르고 있는 피의 온도)이 약 35℃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말한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익히 알려진 대로 약 36.5℃다.
저체온증이 발생하면 피부의 혈관이 수축하면서 창백해진다. 특히 입술은 퍼렇게 보일 수 있다. 잠이 자꾸 온다거나 기면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느려지면서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위독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체온증은 언제 나타날까. 대개 추운 환경에 열 손실이 많이 일어날 때 발생한다. 예를 들면 옷을 얇게 입고 추운 산꼭대기에 올라가거나 온몸에 비를 흠뻑 맞은 채 길에서 잠이 들었을 때다. 이외 에도 갑상샘 기능 저하증 등 내분비계 질환이나 저혈당 환자에게도 저체온증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약물이나 알코올에 중독된 환자들은 중추신경계가 추위를 느끼는 데 둔감해져 저체온증에 빠질 위험이 크다.
전문가들은 지병이 있거나, 술에 취한 사람이라면 선풍기를 틀고 자다가 저체온증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선풍기 바람만으로는 저체온증에 빠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글. 김아지(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