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영역

컨텐츠 내용

THEME SPECIAL

인물과 사물

컨텐츠 이미지

오귀스트
로댕
오 마이 뮤즈
‘끌로델’

뛰어난 예술가들에게는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영감을 불어넣는 매혹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폴 세잔의 사과, 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말이다. 근대 조각의 시조이자 천재 조각가인 오귀스트 로댕에게 ‘예술, 무엇으로 창조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분명 ‘사랑’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뮤즈(Muse)이자 영혼의 반려자 까미유 끌로델을 떠올렸을 것이다.

근대 조각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천재 조각가, 근대 조각의 시조, 신의 손, 미켈란젤로 이후의 최대의 거장 등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1840~1917)을 수식하는 단어들만 봐도 그와 작품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키스> 등 로댕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주의 깊게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품 속 넘치는 생명력에 놀란 적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가 <청동시대>를 선보였을 때 살아있는 모델을 그대로 석고뜬 것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았을까. 사실 로댕 이전 작가들이 이상화된 인간을 표현하는 데 주력해 인물상임에도 인간의 美가 느껴지지 않았던 반면 로댕의 작품에서는 따뜻한 사람의 체온과 감성, 삶의 고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로댕이 서양미술사에서 세계 3대 조각의 거장이라 불리는 것 또한 작품의 사실적 묘사와 함께 인간의 내면과 생명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 욕망에 불을 붙이고 고무하며, 상상력과 영감을 고취하는 존재 즉, 뮤즈가 있듯이 로댕 또한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그가 사랑한 여인들이 그렇다. 로댕을 이야기할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 바로 여성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1864~1943)이다. 그녀는 로댕의 연인이자 경쟁자이며 예술적 영감을 선사하는 뮤즈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로댕 작품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뮤즈, 끌로델

운명이었다. 까미유 끌로델의 후견인 조각가 아프레 부셰가 로댕에게 끌로델의 지도를 부탁하면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반했다. 로댕은 끌로델에게 모델을 제안했고 끌로델이 이를 선뜻 받아들이면서 마흔넷의 중년 남성과 열아홉 소녀의 애절하면서도 비극적인 인연은 시작됐다.
사실, 이 당시 로댕의 옆에는 20여 년간 그의 곁을 지켜온 동거녀이자 네 살 연하의 로즈 뵈레(Rose Beuret)가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로즈 뵈레가 로댕과 끌로델의 사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리지만 독창적인 재능과 조각을 향한 열의, 예술 세계를 논할 수 있는 지식을 갖췄던 끌로델은 로댕에게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자극했다. 거기다 젊고 아름답기까지 한 끌로델에게서 어찌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끌로델은 자연스레 로댕의 뮤즈가 되었고,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이자 조각가와 조수 그리고 연인으로 발전해 나갔다.
끌로델을 만나면서 다시 사랑에 눈을 뜬 로댕은 그 무렵 <키스>, <영원한 우상>, <아이리스, 신들의 전령>, <웅크린 연인> 등 사랑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특히 <키스>는 남녀의 사랑을 묘사한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청동 버전만 300개가 넘을 정도로 인기 있는 작품으로 실제로 살아있는 연인처럼 뜨겁다. 사랑하는 남녀가 격정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의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로댕이 조각가로서 사랑받는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그 전 시대의 예술가들이 비너스나 큐피트로 사랑을 표현한 것과 달리 로댕은 평범한 연인의 몸을 통해 사랑을 관능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끌로델은 <단발머리 까미유 끌로델>, <다나이드>, <사색>,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과 피에르 드 위상의 손> 등을 비롯해 로댕의 수많은 조각 작품과 초상화에 모델로 등장한다.

  • 컨텐츠 이미지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파리의 국립 로댕 미술관
  • 컨텐츠 이미지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대표작 <지옥의 문> 중 일부인 <세 그림자>.

특히 로댕의 대표작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다나이드>는 로댕이 끌로델에 지녔던 사랑이 얼마나 감미로웠는지 작품 속 여인의 관능적인 몸의 선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반죽유리로 제작된 <챙이 없는 모자를 쓴 까미유 끌로델> 또한 소재 덕분인지 빛을 머금은 듯 보여 끌로델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고 있다.
로댕이 끌로델을 뮤즈로서 많은 작품에 투영했듯 끌로델 또한 <로댕 흉상>, <중년> 등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에 대한 사랑을 새겼다. 사랑과 영감을 주고받는 이 시기 두 사람의 작품은 닮은 듯 다른 모습이다.
연인으로서 끌로델에 대한 사랑도 컸지만, 로댕은 조수로서의 끌로델의 능력 또한 신뢰했다.
로댕은 작품 속 다양한 손의 제스처를 통해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성을 표현했다. 그의 대작 <칼레의 시민>, <생각하는 사람>을 비롯해 또 다른 작품들의 일부인 손과 발에는 그만큼 로댕의 작가적 생각이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손과 발의 제작을 끌로델에게 맡길 정도였으니 그녀에 대한 신뢰의 크기를 짐작해 볼 만하다.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

결국 다시 사랑이어라

사랑이 깊어질수록 로댕과 결혼하기를 원한 끌로델, 하지만 로댕은 오래도록 그의 곁을 지켜온 로즈 뵈레를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결국 이별을 선언했다. 끌로델은 결별 후 작품 활동에 매진했지만, 젊음과 재능 모든 것을 헌신해 로댕을 사랑한 만큼 이별의 여파로 정신병적 증세를 보이며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 후 무려 30여 년간 정신병원에서 홀로 고독하게 늙어갔다. 그녀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난 사랑만큼이나 처연하게 서서히 무너졌다.
언젠가 끌로델이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겐 건너지지 않는 바다 하나가 너무 깊다. 이제 혼자서 노를 저을 수 있겠다. 로댕이란 바다를 건널 수 있겠다.”라고 이야기했듯 끌로델은 로댕을 서서히 잊어 갔다. 반면 로댕은 그녀를 영원히 떠날 수 없었다. <챙이 없는 모자를 쓴 까미유 끌로델> 또한 이별 후 만든 작품이다. 로댕은 죽기 직전 건립 중인 로댕 미술관에 끌로델의 작품을 소장해 줄 것을 부탁했고, 현재 파리의 국립 로댕 미술관은 그 뜻을 받아들였다.
사랑은 일찍이 끝이 났지만 두 사람의 예술과 사랑은 그렇게 또 이어져 한공간에서 숨쉬고 있다.
시대의 걸작을 남긴 오귀스트 로댕과 그의 창조력을 일깨운 뮤즈, 까미유 끌로델. 시작도 끝도 결국 사랑이었던 이들에게 어쩌면 사랑과 이별마저도 다른 이름의 예술은 아니었을지.

컨텐츠 이미지
글. 정임경(자유기고가)
일러스트. 이신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