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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SPECIAL

아주 사소한 인문학

소금 따라 새겨진

인류의 발자취

바닷물에 포함된 3%의 이 물질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고, 인체의 세포나 혈액에도 0.9%가 함유돼 생명을 유지시킨다. 태아를 둘러싼 양수에도 3%가량 들어 있어 새 생명을 보호하는 이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 ‘하얀 황금’ 소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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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소금이 있었다

‘소금’이라는 단어는 순우리말 ‘소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 유래 외에도 두 가지 재미있는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소(牛)나 금(金)처럼 귀한 물건이라는 뜻에서 소금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작은 금(小金)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소금은 금처럼 귀한 물질’이라는 것에 일맥상통한다.
처음 소금을 찾아낸 것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었다. 빙하기를 지나고 있던 약 480만 년 전, 당시 인간과 가장 밀접했던 포유류인 매머드(mammoth)는 생존에 꼭 필요한 먹이와 소금을 찾아 유라시아 대륙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동했는데, 이때 구석기 인류 또한 사냥감인 매머드를 따라 함께 움직이게 된다. ‘매머드 스텝(mammoth step)’ 혹은 ‘소금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소금이 인류를 포함한 포유류의 존재 근거이자, 인간이 문명을 일구는 데 소금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기원전 6천 년 전부터 중국 윈청의 염호(鹽湖)에서 본격적인 소금 채취가 이뤄졌다. 당시 소금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었으며, 마을의 주요 수입원이자 세금원이었다. 기원전 252년에 이르러서는 이빙(李氷)이 중국 촉군의 태수로 부임하면서 지역 내 소금 문제를 해결하고자 염정(鹽井)을 팠는데, 이는 최초의 굴착 기술로서 후일 석유를 시추하는 기술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뿐인가. 기원전 116년 전에는 중국의 한에서 소금 전매제를 실시했는데, 이때 거두어들인 돈이 장건의 비단길 개척에 사용되면서 무역의 새 시대를 열었다. 소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새로운 역사로 이어져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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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권력의 중심,
소금

소금을 뜻하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소금 염(鹽)’이라는 한자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왼쪽 윗부분은 신하 신(臣), 오른쪽 윗부분은 소금 로(鹵), 아래는 그릇 명(皿)이다. 소금을 그릇에 받드는 신하의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이는 소금이 국가에 귀속된 물질이며, 곧 국가 권력이라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우리나라 종묘제례(宗廟祭禮)에서는 소금 덩어리를 호랑이 모양으로 조각한 형염(形鹽)을 올렸는데, 그 사실만 보아도 소금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상징했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서양에서도 소금은 진귀하게 취급받았다. 18세기 이전의 유럽에서는 손님이 방문하면 식탁 한가운데에 소금통을 놓고 조금씩 덜어가도록 했는데, 이때 소금통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서 화려하게 장식했다. 재질이 고급스럽고 정교할수록 그 주인의 지위가 높은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배 모양의 소금통이 군주를 상징한다고 하여 권력의 최고점에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혁명의 불씨를 당긴 것도 소금이었다. 1710년, 소금 생산원가의 140배가 넘는 부당한 세금 징수를 강행하자 혁명 직전까지 이에 항의하는 농민봉기가 잇따라 일어났고, 이것이 곧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 얽힌 역사는 소금이 가진 권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2~13세기경부터 소금 채취가 시작된 이 소금광산은 그 깊이만 372m에 달하며 총 9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광산 내부에만 46개의 예배당, 2천여 개의 방, 180개 이상의 갱이 존재하는 등 가히 광대한 규모다. 놀라운 점은 똑같이 이곳에서 채취된 소금이라도 질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달랐다는 것이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의 소금은 ‘성킹가의 머릿결’, ‘녹색 소금면체’, ‘크리스털 소금’, ‘독수리 소금’으로 구분되었고, 하얗고 투명한 독수리 소금은 왕족만이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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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가진 자,
전쟁을 준비하라

다시 ‘소금’이라는 단어로 돌아가 보자. ‘군인’을 뜻하는 영어 ‘soldier’는 놀랍게도 소금을 뜻하는 ‘salt’에서 유래했다. 절대 왕정이 군림하던 16세기 경 유럽에서는 전쟁을 준비하기 전 가장 먼저 소금을 챙겼는데, 병사들이 다쳤을 때 소금물로 치료했으며 녹봉으로 소금을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봉급이라는 의미의 영어 ‘salary’ 역시 ‘salt’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쟁에 소금이 귀한 이유는 또 있다. 전쟁식량으로 쓰였던 대구와 청어를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에 절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명장 이순신 장군 또한 전쟁 당시 염전사업을 벌여 식량 관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금은 시민·국가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에 이를 점유하기 위한 전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베네치아 공국과 제노바 공국은 소금을 차지하고자 1250년부터 무려 120여 년에 걸쳐 4번의 전쟁을 치렀고 승리한 베네치아는 100여 년간 경제권을 독점할 수 있었다. 기원전 58년 로마의 시저 황제는 갈리아를 정복하기 위해 이베리아(지금의 스페인)와 소금 분쟁을 벌였으며, 1890년대 칠레와 페루 간 태평양 전쟁을 치를 때에는 안데스산맥의 소금산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다.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뜻을 가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도시 내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소금 광산 덕분에 번성했지만, 그 채굴권을 두고 17세기 인근 바이에른 공국과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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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오랫동안
인류를 먹여 살려 왔고,
그 쓰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간디의 소금 행진으로
독립의 기반을 마련한
인도에는 소금에 관한
오래된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인류를 살려온,
살려갈 소금

소금은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소금에 포함된 나트륨은 알칼리성 소화액의 성분이 되며, 염분이 결핍될 경우 소화액의 분비가 감소해 식욕이 감퇴되고, 장기적인 염분 부족은 피로누적, 현기증, 의식혼탁, 정신불안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렇듯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물질이기에 ‘생존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소금’이라는 뜻의 ‘구황염(救荒鹽)’이라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다. 조선 시대 흉년이 들었을 적에 백성이 가장 반긴 나라의 구호물자도 곡식이 아닌 소금이었다. 무엇도 그를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금은 오랫동안 인류를 먹여 살려 왔고, 그 쓰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간디의 소금 행진으로 독립의 기반을 마련한 인도에는 소금에 관한 오래된 속담이 전해 내려온다. ‘아버지의 가치는 타계 후에 알고, 소금의 가치는 없어진 뒤에 안다’는 말이다. 이 말에는 태곳적부터 소금을 대해온 인간의 경건한 태도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인류의 탄생부터 발전, 그리고 미래까지 거머쥐고 있는 소금의 가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빛난다.

글. 성지선(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