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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SPECIAL

아주 사소한 인문학

네바문 무덤 벽화 <늪지의 새 사냥> 작가 미상, BC 1350년경, 82×98×22cm, 대영박물관 소장

화폭에 담긴 호동그란 눈

예술작품 속 고양이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후략)’ 시인 이장희의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에서는 예술가가 바라본 고양이의 자태가 엿보인다. 도도하면서도 사랑스럽고, 무심해 보이면서도 외로운 듯한 이 작은 생명체는 실로 오랜 세월 동안 예술가들이 예찬해온 존재였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만난
고양이

이집트는 유구한 역사와 신화로 유명하다. 그중 고양이 머리를 한 여신 바스테트(Bastet)는 특히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에 깊게 관여된 신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태양신 라(La)의 딸 중 하나인 바스테트는 수호의 여신으로서 평소에는 고양이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투에서는 최고의 통치자였던 파라오(Pharaoh)를 보호하기 위해 암사자의 머리로 나타난다고 한다. 왜 수호의 여신 바스테트는 고양이의 형상을 띠고 있을까? 그 실마리는 네바문 무덤 벽화 <늪지의 새 사냥>에서 찾을 수 있다.
늪지대에서 새와 물고기를 잡는 데 몰두한 청년의 바로 옆에 한 마리 고양이가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등을 잔뜩 세운 고양이는 앞발로 새의 목과 등허리를 꽉 붙잡고, 입으로는 다른 새의 날갯죽지를 물어뜯는 용맹한 모습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사냥과 같이 필수적인 일상에서도 함께하는 동물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설치류를 잡아먹으면서도 곡식은 건드리지 않는 고양이는 인간과 그 생활을 지키는 창고지기로 제격이었다. 파라오는 고양이에게 수호의 여신 바스테트의 지위를 부여해 고양이를 보살피는 사람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고, 사고로라도 고양이를 죽인 사람은 사형에 처했다.

르네상스의 시대를 연
고양이

종교적이고 관념적인 중세시대의 미술은 신앙과 지식이 분리되는 르네상스에 이르러 종말을 고한다. 역사상 최고의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연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그는 작품 이외 방대한 양의 인체 해부도나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그린 스케치를 남겼는데, 피사체의 윤곽선, 그림자, 음영, 움직임에 주목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움직임이 유연하고 섬세한 고양이는 그래서 그의 눈에 띄었을지 모른다. “가장 작은 고양이는 하나의 걸작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고양이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습작(15세기경)>을 비롯한 고양이 소묘를 11점이나 남겼다.
그의 스케치 속 고양이는 때로 아이에게 안겨 발버둥치고 있기도 하고, 등을 둥글게 말거나 앞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기도 하다.
얼굴뿐 아니라 뒷모습, 비스듬한 측면에서 바라본 옆모습 등 여러 방향으로 그리면서 움직임을 상세히 기록했다. 표정 또한 다양하다. 골똘히 앞을 응시하거나 옆을 보고 경계하고, 또는 곤히 잠들어 있는 얼굴도 놓치지 않았다. 움직임이 민첩하고 관절이 유연한 동물인 고양이를 피사체로 삼아 그린 그의 스케치에서는,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적 천재성과 르네상스 시대다운 과학적 접근이 여실히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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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사자 그리고 용에 대한 연구> 레오나르도 다 빈치 作 1513~1515년경 드로잉, 27×21cm, 영국 윈저성 왕립도서관 소장

근대 미술에 등장한
고양이

세련되고 도시적인 회화를 다수 제작했으며, 이로 인해 정통미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공격 대상이기도 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말년에 이르러 특별한 그림 하나를 그렸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받친 여인이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흑백무늬의 고양이 한 마리를 사뿐히 올려놓고 있는 그림이다. 화폭 안의 모델은 다름 아닌 에두아르 마네의 부인인 수잔 마네, 그리고 부부의 반려묘 고양이 ‘지지’다. 마네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년 전에 작업한 이 그림에서는 말년에 그가 사랑한 두 피사체가 담겨 그 자체로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이외에도 마네는 고양이 지지를 모델로 꽤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마네의 대표작 <올랭피아>에는 알몸의 여인이 등장하고, 그 발치에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곧게 세우고 있다. 역사나 신화를 주제로 삼아 그렸던 기존 아카데미학파에서 벗어나 현실의 여인을 그린 이 작품은 등장과 함께 화제가 되었으며 작품 속 여인은 ‘고양이와 함께 한 비너스’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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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과 고양이> 에두아르 마네 作 1880년, 캔버스에 유채, 92.1×73cm,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소장

현대 예술가의 눈에 비친
고양이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부릅뜬 채 정면을 응시한다. 미간에는 한 마리의 새가 그를 놀리듯 총총 도망가는 중이다. 고양이는 내심 화가 난 얼굴로 온 힘을 다해 새에 집중하고 있다. 노랑과 빨강, 파랑의 유쾌한 색채로 고양이의 사냥 순간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파울 클레(Paul Klee)의 작품 <고양이와 새>다.
스위스 태생의 화가 파울 클레는 음악, 문학, 회화 모두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타고난 예술가로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더불어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클레의 작품에서는 마치 아동회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단순한 접근이 엿보이면서도, 빛과 색채를 구조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음악적 운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던 파울 클레는 소문난 애묘인(愛猫人)으로 평생 고양이들을 화실 동료로 삼았다. <수고양이의 영역>, <신성한 고양이의 산>, <꽃과 소녀> 등은 모두 고양이를 소재로 한 클레의 작품이다.
<고양이와 새>는 그가 고양이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데, 그가 추구했던 동심의 세계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간결한 선으로 표현된 동그란 눈과 눈동자, 삼각형의 귀, 고양이의 욕망을 뜻하는 빨간 하트의 코끝 등은 맑은 색채와 어우러져 과감하고도 위트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는 예술가들에게 생활의 일부이자 시대의 초상, 개성을 나타내는 매개로서 풍부한 영감을 선사했던 고양이. 화폭에 실린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여전히 깊고 맑은 눈망울만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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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새> 파울 클레 作 1928년, 캔버스에 유채와 잉크, 38.1×53.2cm,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글. 성지선(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