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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길에서 만난 풍경

아름다운 바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산을 품은 섬

통영 사량도

섬에서는 바다가 유난히 크고 넓게 다가온다. 사람들의 희로애락도 바다가 좌우한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은 외롭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작고 초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남 통영의 사량도에서는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인다. 자신이 서 있는 데가 곧 세상의 중심처럼 느껴진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연전망대가 곳곳에 산재한 덕택이다.

산이 좋아 섬에 들어오는 사람들

사량도는 남해도와 통영 미륵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고성군의 자란만과 마주본다. ‘사량도’라고 하면 흔히들 하나의 섬으로 오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너비 300~400m 가량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상도(윗섬)와 하도(아랫섬)로 나뉜다. 두 섬 사이의 바다는 마치 강처럼 좁다. 그래서 ‘동강(桐江)’이라 불린다. 오동나무처럼 물빛이 푸르고, 강처럼 폭이 좁다는 뜻이다. 두 섬 사이의 바다가 마치 뱀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사량도(蛇梁島)’라 불리게 됐다는 말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섬의 형태가 뱀을 닮은 데다가 뱀도 많아서 사량도라 명명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사량도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두 섬 모두가 옹골찬 산세를 자랑한다. 윗섬에는 옥녀봉에서 가마봉과 불모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우뚝하다. 아랫섬에도 칠현봉, 망봉, 용두봉 등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장대하다.
윗섬에는 면사무소와 항구가 위치한 진촌마을을 출발해 옥녀봉, 연지봉, 가마봉, 불모산, 지리산 등의 봉우리를 두루 거쳐 돈지마을로 내려서는 종주코스도 개설돼 있다. 이 종주코스는 내륙의 어느 명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산행의 묘미가 다채로운 명품코스로 유명하다. 주말과 휴일마다 수 천 명의 외지인들이 이 섬을 찾는 까닭도 십중팔구는 산행에 있다.

사량도, 하도, 상족암 군립공원, 고성군, 사량도 여객선 터미널, 통영시청, 당포항
사량도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두 섬 모두가 옹골찬 산세를 자랑한다.
윗섬에는 옥녀봉에서 가마봉과 불모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바위 능선이 우뚝하다.
아랫섬에도 칠현봉, 망봉, 용두봉 등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장대하다.
  • 사량도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해질녘의 노을진 바다.
  • 평탄한 데크 길에서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편히 바라보며 걷기에 좋다.

코스 따라 다른 진풍경을 선사하는 종주산행

사량도 종주산행에 나선 이들은 대개 돈지마을에서 시작해 진촌마을로 하산한다. 산행을 마친 뒤에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금평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주변 식당에서 때늦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심신의 피로가 쌓인 산행 후반부에 고난이도의 불모산~옥녀봉 구간을 통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촌마을을 출발해 체력이 좋은 상태에서 옥녀봉~불모산 사이의 험로구간을 통과한 다음, 비교적 평이하고 안전한 불모산~지리산~돈지마을 구간을 산행의 후반부에 통과하는 것이 안전하다.
더군다나 진촌마을 위쪽의 옥녀봉은 동쪽으로 시야가 훤해서 일출 감상 포인트로도 제격이다. 해뜨기 한 시간 전쯤에 진촌마을을 출발하면 옥녀봉 정상에서 한려수도의 절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해돋이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비껴서기도 힘들 만큼 비좁은 달바위의 칼날 같은 등산로.
가장 높은 불모산 능선을 내려서서 가마봉으로 향하는 등산객.

황홀하면서도 아찔한 스릴을 선사하는 날카로운 암릉

진촌마을에서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산행을 시작한 지 20~30분쯤만 지나면 답답한 숲길을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인 능선 길에 올라선다. 관공서와 민가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진촌마을이 발아래에 놓이고, 두 섬을 가르는 동강은 호수처럼 고요하다. 다급했던 발걸음과 마음이 절로 느긋해지는 풍경이다. 하지만 사량도의 산길에서는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된다.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날카로운 암릉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옥녀봉 정상이다. 아득한 옛날, 욕정에 눈먼 아버지가 자신을 범하려고 하자 이봉우리에서 몸을 던졌다는 옥녀의 슬픈 전설이 서린 곳이다. 옥녀봉에서 다시 날카로운 능선을 얼마쯤 걷다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면 연지봉 정상이다.
옥녀봉에서 연지봉을 거쳐 가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황홀하면서도 아찔하다. 심장이 쫄깃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오금 저린 구간이 수시로 나타난다. 외줄을 잡고 깎아지른 암벽에 오르기도 하고,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도 통과해야 된다. 사량도의 새로운 명물로 유명한 출렁다리도 건넌다. 가장 높은 능선의 커다란 바위 사이에 걸쳐 있는 두 개의 다리는 마치 하늘과 맞닿은 듯하다. ‘출렁다리’라는 이름과는 달리, 별로 출렁거리지는 않아서 심약한 사람들도 무난히 건널 수 있다.
흔들다리 입구의 쉼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신의 평정을 되찾은 뒤에 바라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능선 양쪽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떠 있는 남해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바다와 바다 사이에는 공룡의 이빨처럼 뾰족뾰족한 산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바다빛깔이 어찌나 푸른지, 날씨 쾌청한 날이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쪽빛바다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섬마을들의 풍경도 더없이 정겹다.

  • 사량도 출렁다리와 가마봉 사이의 깎아지른 암벽에 설치된 철계단.

산을 걷고, 길을 달리기에도 안성맞춤인 사량도

가마봉 정상을 뒤로하고 톱날처럼 날카로운 톱바위를 지나면 이내 사량도의 최고봉인 불모산 정상에 당도한다. 불모산 정상의 달바위에서는 남해도의 금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명산 지리산도 한결 또렷하게 다가온다. 불모산의 서쪽에 이웃한 봉우리도 지리산이다. 원래는 ‘지리산을 바라본다’는 뜻의 지리망산(智異望山)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망’자가 떨어져 지리산으로 바뀌었다. 봉우리의 높이나 전체 규모는 진짜 지리산에 감히 견줄 수도 없지만, 그 탁월한 조망만큼은 해발 1,915m의 지리산 천왕봉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장쾌하다.
지리산에서 돈지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편안하다. 돈지마을에 도착하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래도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인해 가슴은 뿌듯하다. 총 8km에 이르는 이 종주코스를 완주하는 데에는 대략 4~5시간쯤 걸린다.
사량도는 자동차로 한 바퀴 둘러보기에도 좋다. 특히 윗섬에는 섬 전체를 일주하는 해안도로가 개설돼 있고, 이 도로가 지나는 바닷가 곳곳에는 아담한 갯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사량도는 남해안에서 소문난 바다낚시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바다가 깨끗하고 수중암초가 많아서 볼락, 노래미, 참돔, 광어, 감성돔, 농어 등의 다양한 어종이 많이 잡힌다. 주로 8월부터 10월까지는 농어와 삼치가 많이 잡히고, 찬바람이 부는 11~12월에는 볼락과 도다리 등의 입질이 좋다고 한다.

사랑도 옥녀봉과 가마봉 사이의 높은 바위에 설치된 출렁다리.
TIP
  • 숙박

    여객선터미널(금평)이 있는 진촌마을과 대항해수욕장 주변에는 숙박업소가 몰려있다. 해수욕장에는 화장실, 급수대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야영장도 있다.

  • 맛집

    진촌마을(금평항) 주변에는 횟집과 식당이 여럿 있다. 자연산 생선회, 회덮밥, 장어탕, 매운탕 등의 해산물 요리가 주종을 이룬다. 맛과 가격은 엇비슷한 편이다.

  • 교통

    통영시 도산면의 가오치선착장에서 사량도 윗섬의 사량여객터미널(금평항)까지는 카페리호(철부선)로 40분쯤 걸린다. 고성 용암포선착장~사량도 내지항, 삼천포항~내지항 항로에도 철부선이 수시로 운항한다. 항로마다 대략 하루 5~7회씩 정기적으로 카페리호가 운항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증편된다. 섬 안에서는 배 도착 시간에 맞춰 여객선터미널(금평)에서 2시간마다 출발하는 일주순환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글·사진. 양영훈(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