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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문화가 있는 저녁

BOOK

마음의 옷깃을
여미는 계절

집을 나설 때 옷깃을 여미게 되는 요즘이다. 몸과 마음의 온도는 통하기에 마음의 옷깃도 함께 살펴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터라 쉽게 지나치곤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얼어붙지 않도록 지금, 따뜻한 커피 잔에 두 손을 얹고, 몸과 마음을 녹여줄 책들을 만나보자.

책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의 제목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공감을 불러일으킨 까닭도 여기에 있겠다. 저자는 기분부전장애, 그러니까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다가 이를 치료하러 상담실을 찾았고, 대화를 나누며 작은 변화를 차례로 시도한 끝에 한결 나아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치료 성공담이 아니다. 솔직히 드러내기 쉽지 않은 마음의 아픔을 전하며, 혼자 아픔을 감내하는 다른 이들에게 여기 당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누군가는 자신과 비슷한 내 손짓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함께 안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선생님과 주고받은 상담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가 겪은 어려움은 낮은 자존감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손안에 들어오면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있으니, 자신이 힘을 기울이고 빛을 발하여 얻은 무엇이라 해도 그것의 가치를 만끽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가혹하게 대하기 일쑤다. 물론 이를 끝까지 견뎌줄 사람은 흔치 않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당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빛이 아닌 자신의 그늘을 먼저 어루만지는 지혜를 만나보기 바란다.

책 플로렌스 윌리엄스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

플로렌스 윌리엄스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

도시에 살다 보면 숨을 쉴 공간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까운 주변 공원을 둘러볼 여유가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다. 도심 속 소소한 자연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으로도 연구되고 증명되는 효과다.
핀란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도심 속 공원에서 15분 이상만 머물러도 활력을 되찾고 지친 몸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자연의 회복력은 구체적인 치유책으로 고려되어야 마땅하겠다.
이 책의 저자는 자연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는데, 한국에서 마주한 자연 치유의 현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장성 ‘치유의 숲’을 찾아가 250만 그루에 이르는 편백나무 숲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숲의 향기에 흠뻑 젖는다. 이렇게 즐기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한국인들이 고대부터 수호신으로 나무를 섬겼다’는 등 숲과 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오래된 마음을 살피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이 가평의 산음산에서 산림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현장을 방문하며, 사람과 자연의 교감을 확인한다. 도시에서 자연은 필수가 아니라 사치로 여겨지기 일쑤다. 사람을 위한 공간도 부족한데 자연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핑계다. 그러니 더욱 ‘자연이 마음을 살린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제목을 되새길 때다.

책 정혜신 <당신이 옳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마음의 전사’라 불린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료실보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사회적 아픔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마음들을 돌봤다. 그는 이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두 가지 치유의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는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내 감정 상태를 확인하며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심리적 심폐소생술’이고, 둘째는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적정 심리학’이다. 물론 이 두 가지 방법은 결국 하나이고, 그 핵심은 공감이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익숙한 설명이다.
그런데 그가 전하는 공감에는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바로 경계다. 우리는 개별적 존재이니 자기 보호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고, 나와 너 사이에 있는 경계를 존중하며 서로를 동시에 보호해야 공감에 이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모자랐던 건 ‘너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나에 대한 공감’이고, 먼저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서 공감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어떤 이해와 위로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다.
일단 오늘은 내 생각과 느낌을 믿고 자신과 대화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다. 더 넓은 공감을 위해서 말이다.

MUSICAL

다양한 장르
다양한 여성 배우와의
만남

해가 짧아진 만큼 예고도 없이 한기가 찾아들었다. 첫 서리가 맺혔다는 소식도 들린다. 갑작스런 추위에 마음까지 시리다면 마음의 온도를 올려줄 이런 영화는 어떨까. 우리가 사랑하는 세 명의 여배우들이 드라마, 멜로, 공포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약한 세 편의영 화를 추천한다.

영화 <뷰티풀 데이즈> 포스터

감독 : 윤재호
출연 : 이나영, 장동윤, 오광록
개봉 : 11월 예정

뷰티풀 데이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자, 배우 이나영의 6년 만의 복귀작으로 더 관심을 모았던 영화 <뷰티풀 데이즈>. 영화는 한 탈북 여성의 기구한 삶을,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을 통해 디테일하게 조명한다. 조선족 대학생 젠첸은 병든 아버지(오광록)의 부탁으로 오래 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나영)를 찾아 한국에 오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그녀는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실망만 안고 한국을 떠난 젠첸. 이후 그녀의 일기장을 보고 감추어 졌던 엄마의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데. 엄마의 삶은 10대, 20대, 그리고 30대까지 각 세대별 탈북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을 대변하고 있다.
윤재호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하기 이전부터 분단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조명해 왔다. 칸국제영화제 ACDI(프랑스 독립영화배급협회 주간) 등에서 호평받은 다큐멘터리 <마담B>(2016) 역시 탈북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데, 감독은 직접 탈북자인 여성을 따라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의 국경을 넘나들다 밀입국자로 처벌받고 추방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감독 시선 속의 탈북 여성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감으로써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 <필름스타 인 리버풀> 포스터

감독 : 폴 맥기건
출연 : 아네트 베닝, 제이미 벨
개봉 : 10월 25일

필름스타 인 리버풀

‘사랑’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는 정통 멜로에 목이 마르다면, <필름스타 인 리버풀>이 그 답이 되어줄 것이다. <악당과 미녀>(1952)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은막의 스타 글로리아 그레이엄과 그녀 생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피터 터너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로맨틱 멜로. 1978년 리버풀. 영화는 전성기가 지난 글로리아(아네트 베닝)가 런던에 있는 피터(제이미 벨)의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게 되면서 연인이 되었던 한때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둘의 사랑을 돌아보는 이야기의 구성이 무척 흥미롭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글로리아가 한때 연인이었던 피터의 집으로 찾아오면서,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는 순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보통 과거를 회상할 때 흔히 쓰는 화면을 컷하는 방식대신, 폴 맥기건 감독은 피터의 현재에서 문 하나만 열어도 과거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유연한 장면 전환을 사용한다.
<러브 어페어> 속 우아한 모습 그대로의 아네트 베닝이 글로리아를 연기한다. 주름진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이들의 연애담에 빠져들게 된다. 제이미 벨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사랑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가진 청년 피터로 분하는데, <빌리 엘리어트>의 발레에 재능을 보이던 영국 탄광촌의 어린 소년 빌리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어느새 부쩍 자라 성인이 된 그의 원숙한 연기가 한층 더 반갑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 <할로윈> 포스터

감독 : 데이빗 고든 그린
출연 : 제이미 리 커티스, 주디 그리어
개봉 : 10월 31일

할로윈

1978년 제작된 호러의 거장 존 카펜터의 호러영화 <할로윈>이 무려 40년 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그간 <할로윈>의 후속편이 9편이나 나왔지만, 이번엔 1978년 판 원조 <할로윈>을 토대로 만든 리부트 버전이다.
2018년의 <할로윈>에서 살인마 마이클은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마이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찾아간 방송팀이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는데, 마이클은 병원 이송 도중 사람들을 죽이고 탈출해서 40년 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던 해든필드로 향한다. 희생양으로 지목 된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는 다시 살인마 마이클과 맞딱드리지만, 이번엔 과거의 나약한 모습이 아니다. 수십 년간 그녀의 삶은 온전히 언젠가 다시 마주칠 마이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영화는 그 긴 시간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악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한 여성 로리의 시간에 철저하게 초점을 둔다. 40년 전 원작 <할로윈>과는 확연히 다른 관점이다. 특히 로리가 자신뿐만 아니라 딸 캐런(주디 그리어)에게까지 총 쏘는 법을 가르치고, 이 가르침이 손녀 앨리슨까지 이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원작 주역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존 카펜터 감독은 이번 <할로윈>의 음악을 맡았고, <할로윈>(1978)의 주연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는 40년 후 로리를 직접 연기한다.

글. 박태근(북칼럼니스트), 이화정 기자(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