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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취향의 전쟁

가볍게 갖고 놀거나
따뜻하게 마음을 잇거나

디지털 오디오 vs 아날로그 오디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디지털은 모든 편리함을 선사하고 있다. 고용량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블루투스 스피커…. 이제 노래는 건드리면 쏟아진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아날로그로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진공관 앰프, 수제 케이블, LP 앨범, 턴테이블…. 그 모든 걸 꼼꼼히 연결해서 음악과 만난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을 만나기도 한다.

낭만적인 아날로그에서 편리한 디지털로

80년대 주머니가 가벼운 청소년들은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 신청곡을 틀어달라고 하고, 그걸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했다. 조금 부유한 집안에서는 LP 플레이어에 앰프를 연결해 음악을 즐겼다. LP를 턴테이블에 놓고 바늘을 올리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30분가량 A면을 듣고 나서 직접 판을 뒤집어야 B면을 들을 수 있었다. 아날로그 음악은 좋게 말해서 낭만적이다. 하지만 번거롭기 그지없다.
2018년의 음악 환경은 97% 이상 디지털이 장악했다.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엄청난 양의 음악을 저장해서 들을 수 있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언제 어디서든 무한대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디지털 음악은 이처럼 쉽고 편리하다. 그리고 딱 그만큼 음악을 대하는 마음까지 쉽게 만들어버렸다. 수시로 쏟아지는 싱글곡들을 그때그때의 배경음악으로 삼을 뿐, 앨범 전체를 작품으로 이해하며 진진하게 듣지 않는다.

음악은 총체적인 경험이기에

아날로그 오디오가 그래서 부활했다. 애매한 아날로그는 아니다. 디지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싸고 번거롭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을 만족시키는 최고급의 아날로그다. 부활하는 아날로그 오디오의 심장엔 진공관 앰프가 있다. 진공관은 디지털 음악의 메마른 소리를 따뜻하고도 개성 넘치는 음색으로 바꾸어 준다. 트랜지스터 앰프와는 달리 PCB 기판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신호의 손실이 적다. WBT 금도금 단자, 은선 배선 등의 고급스러운 기술을 더하면 최대한의 원음에 접근하게 해준다.
디지털 오디오 애호가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아날로그 오디오가 고급스러운 음악 감상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나 돈을 쓸 일인가? 수입 진공관 앰프만으로도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투자해야 한다. 여기에 걸맞는 턴테이블, 카트리지, 스피커 등을 갖추려면 오디오 감상실에 보험을 들어두어야 할 정도가 된다. 또 보통 사람의 청각은 그런 소리를 구별할 만큼 예민하지 않다. 음악 감상의 가성비 면에서 아날로그는 디지털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음악을 ‘귀에 들리는 소리’로만 한정 짓는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은 총체적인 경험이다. 요즘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을 쓴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아날로그 오디오의 환경은 최적의 케렌시아를 만든다. 진공관 앰프가 따뜻하게 불을 밝힌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순간, 현실의 잡념을 모두 지울 수 있다. 매번 뒤집어줘야 하는 LP 플레이어를 귀찮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그 행위 때문에 더욱 음악에만 집중한다. 수백 곡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장치로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음악 문화다.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함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새로운 음악 문화로

아이포드, 아이튠즈로 대표되는 애플의 디지털 음악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해왔다. 이제는 음악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컨택하는 시대다. 뮤지션들은 디지털을 통해 음악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DJ 음악은 샘플링을 위해 수많은 LP 판을 들고 다녀야 했지만 지금의 EDM 뮤지션은 물론 클래식 작곡자들도 디지털 기기와 가상 전자 악기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낸다.
사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서로 다투기만 하는 건 아니다. 디지털 음악 시장에 하염없이 밀리기만 하던 전 세계 LP 시장이 조금씩 부활하여 지난 2014년에는 음반 판매의 2%라는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했다. 여러 뮤지션들이 디지털 음원과 더불어 한정판의 LP 앨범을 찍어내는 더블 트랙의 전략을 시도하기도 한다. 수십 년 전에 절판된 LP 앨범을 디지털로 복원해서 새로운 세대들에게 보급하는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의 음반사 콘토르(Kontor)는 LP 모양의 홍보물에 스마트폰을 올리면 화면 속의 LP가 돌아가며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그랬더니 홍보물을 받은 사람의 71%가 음악을 재생해 보았고, 42%가 온라인 숍에 들어갔다고 한다.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따뜻한 감성을 결합시키는 일. 오늘의 음악 문화가 마주한 흥미로운 숙제가 아닐까?

글. 이명석(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