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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SPECIAL

아주 사소한 인문학

그 방에 그가 있었다

예술가들의 방

예술가들에게 그들의 방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인보다 예민하고 얇은 감각의 피부를 가진 그들은 때로는 우리처럼 방 한구석에서 울고, 때로는 웃었으며, 언젠가는 하나의 깊고 넓은 우주를 떠돌듯 그 안을 유영하거나 헤매었을 테다. 예술가의 손을 빌려 태어난 위대한 작품들의 탄생지를 지금 살짝 엿본다.

영감의 원천이 된 자기만의 공간
앙리 마티스

야수파의 대표적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필치로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를 이끈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고 있다. 본래 법률가를 꿈꾸던 그는 병에 걸려 요양하는 동안 어머니가 사주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며 처음 예술에 눈을 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로 전향한 그는 예술에 일생을 바쳤다. 관절염으로 붓을 들지 못하자 색종이를 오려 작품 활동을 했으며, 80세의 병든 몸으로도 예배당의 벽화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디자인했다. 병상에서는 긴 장대를 이용해 벽면에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던 인물이었다.
앙리 마티스는 특히 자신의 화실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화가이기도 하다. <빨간 화실>, <분홍 스튜디오>, <커다란 붉은 실내> 등은 모두 그의 화실을 대상으로 삼아 그린 작품이다. 각각의 그림은 붉은색이나 분홍색 등의 한 가지 색깔이 주조를 이루고, 그림자나 원근법도 무시한 형태를 띠고 있다. 마티스는 자신에게 친숙한 아틀리에를 의도적으로 왜곡해 표현했다. 사실적이지 않은, 평면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며 자신만의 예술적 가치를 투영한 것이다.
라이벌이었던 피카소가 반바지만 걸친 알몸이나 셔츠 차림으로 여러 작품이 뒤섞인 작업 공간에서 그림을 그린 것과는 달리, 마티스는 얼룩 하나 없는 깨끗한 화실에서 정장을 입거나 깨끗한 가운을 걸치고 작업에 임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마티스에게 그의 화실은 가장 아끼던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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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그대로 닮은 공간
미야자키 하야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 사이를 소년 소녀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다 넉넉한 숲의 품으로 안기듯이 낙하한다. 무한한 자연을 배경으로 마녀와 고양이, 요괴, 각종 신들이 등장해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이미지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미(みやざきはやお, 1941~)는 일본 고유의 신도사상을 바탕으로 한 굵직한 명작들로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미래소년 코난>으로 데뷔해 1984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배달부 키키>등을 잇달아 발표해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영화 대상에 줄줄이 랭크되었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발표하면서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수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우뚝 선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지브리 스튜디오 2층에는 평생 애니메이션에 투신한 그의 열정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업실이 있다.
하야오 작품의 원화 및 밑그림이 전시됐을 뿐 아니라 그가 쓰던 책상과 필기구, 가지고 놀던 장난감까지 그대로 가져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가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생생하다. 정돈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작업자를 위한 최적의 위치에 놓여 있는 필기구, 사방에 빈틈없이 붙어 있는 콘티북, 스토리보드, 스케치 등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디테일하다. 재미있는 것은 작업실 풍경이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와 크게 닮아있다는 점이다. 높은 천장과 다락방을 연상케 하는 아늑한 분위기, 고풍스러운 작업대와 의자, 높다란 스탠드 등을 바라보다 보면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어느 주인공이 와서 앉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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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한 헛간에 새겨진 삶의 자국
잭슨 폴락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은 커다란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페인트를 붓고, 튀기고, 흘리고, 때로는 끼얹으면서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개막했다. 그는 유일하게 살아생전 유럽의 현대 화가들과 동등한 명성을 누린 작가이기도 하다.
미국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프턴의 작업실에서 잭슨 폴락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캔버스를 바닥 전체에 펼쳐놓고 때로는 그림 안으로 들어가 물감을 자유롭게 흩뜨리며 몸 전체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떨어진 물감 위에 또 다른 색이 더해지기도 하고, 빈 캔버스가 새로운 색으로 흠뻑 물들기도 하면서 완성됐다. 각각의 작품은 작업자의 동선과 행위가 그대로 반영됐기에, 그 시간을 그대로 캔버스 위에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잭슨 폴락의 작품이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 불리는 이유다.
온몸을 던져 행위로써 그림을 그리는 잭슨 폴락에게 작업실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는 헛간을 개조해 작업실로 꾸몄고, 이젤을 놓지 않은 채 바닥에서 작업했다. 붓 대신 페인트통과 여러 개의 물감 튜브들이 구석을 메웠다. 그에게 유독 작업실이 의미 있는 이유는 평생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불안해했던 잭슨 폴락이 그의 유일무이한 뮤즈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4~1984)’와 결혼해 짧게나마 안정을 찾았던 공간이었던 까닭이다.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사고로 숨진 잭슨 폴락을 추모하며 크래스너가 남은 생을 마감한 장소도 이곳이다. 현재 두 사람이 사용했던 작업실은 미술관으로 지정되어 그의 작품과 같이 일생을 고스란히 기록한 하나의 캔버스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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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연필, 다른 손에 호미를 든 한국문학의 별
박경리

“마흔여섯부터 지금까지니까, 스물네 해를 <토지>와 더불어 살아왔던 것 같아요. 삶이 지속되는 한 <토지>는 끝나지 않을 거예요.” 한국 문학을 환히 비춘 크나큰 별,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말이다. 최참판 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19세기 말경부터 해방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모습, 경상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만주와 서울, 도쿄까지 그려낸 대하 소설 <토지>의 방대한 스토리는 과연 인간의 필력이 어디까지 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까지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박경리의 가족사는 평탄하지 않았다.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그가 소설가로서는 위대했지만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토로할 만큼 불행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비롯해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등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문학작품은 한국 문학사에 하나의 이정표로서 길이 남았다.
통영에 위치한 박경리 기념관과 옛집에는 그 모든 작품이 탄생한 곳인 그녀의 집필실이 있다. 그녀는 야트막하고 넓은 상을 중앙에 펴놓고 책상이 아닌 바닥에 앉아 원고를 손으로 써내려갔다. 평상 외에는 작은 농 하나와 등, 집필을 위한 필기구, 책이 집필실의 전부다. 서재는 작업실과 사뭇 다른데, 벽면 하나의 책장을 꽉 채우고 남은 책들이 방 안 곳곳에 쌓여 있다.
또한 그는 평생 밭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작업실은 그저 방 한 칸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던 밭과 책으로 산을 이룬 서재를 모두 아우른 그녀만의 집,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글. 성지선(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