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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문화가 있는 저녁

BOOK

연말연시,
당신에게 선물하고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맘때면 오랜만에 안부를 건네도 어색함보다 반가움이 앞선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마련해 숨겨둔 마음을 적어볼 기회도 생긴다. 이렇듯 훈훈한 분위기에 책을 더해보면 어떨까. 선물하기 까다로운 책이라지만,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모두에게 어울릴, 가볍게 건네지만 오래 남을 이야기를 만나보자.

책 백영옥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백영옥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다시 보고는 왜 이곳에 밑줄을 남겼는지 기억조차 못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럴 줄 알면서도 밑줄을 긋는다. 읽었다는 흔적일 수도, 동감했다는 표현일 수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표시일 수도 있을 텐데, 작가 백영옥은 밑줄이 치유라고 말한다. “제가 그어온 책 속 밑줄 중 단 하나라도 당신의 상처에 가닿아 연고처럼 스민다면 그것으로 저는 정말 기쁠 거예요.”
물론 밑줄 긋기는 다른 이의 치유 이전에 나의 공감이다. 그래서 “세상에 누구도 없는 듯 아픔이 찾아오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을 찾아”내려 책장을 뒤적이고, 오래 전 책 속에서 “어릴 때의 내가, 어른이 된 나에게 건네는 시간의 선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려 노력”하는 마음으로 밑줄을 긋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밑줄도 남기지 않아도 좋다. “바쁠수록 우리에게는 빈 공간이 필요”하니 인생이라는 “하나의 긴 문장”에 “반드시 쉼표”를 찍어야 할 때를 만난다면 꼭 밑줄이 아니어도 충분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에 굳이 밑줄을 긋는다.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려도 삶은 계속될 테니까” 말이다.

책 다카하시 사치에 <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

다카하시 사치에 <백 살에는 되려나 균형 잡힌 마음>

무려 50년 동안 병원을 운영하며 정신과 의사로 일해온 다카하시 사치에는 이렇게 답한다. “그 세월은 아득하리만치 긴 시간이었죠. 거기서 얻은 교훈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바로 ‘절대적인 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꼭 100세가 아니라도 각자가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겸손한 마음과 존중하는 자세로 나눈다면 즐겁지 않을까 싶다.
그가 전하는 인생의 지혜는 바로 균형이다. 너무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지지 말라고, 너무 참으면서 살지 않아도 되지만 남에게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라고,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내는 분별력이 어른이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말한다. 100년을 살아온 그는 이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지만, 그 역시 여전히 균형을 찾아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진작 움직이지 않는 완벽한 균형을 찾았다면 여든에 수채화를 배우고 아흔에 스도쿠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터, 결국 각자는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뿐, 이후에는 흐름에 몸을 맡겨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완벽한 균형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순간, 삶은 고정되어 재미를 잃을 게 확실하다. 그는 “나이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죽어도 괜찮다.”며 씩씩하게 말하면서도, 건강을 위해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는 자신의 모순을 고백하는데, 인생이란 이처럼 “불안과 공생하며”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책 박산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박산호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어른이라고 완벽할 수는 없다. 오히려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어른이야말로 어른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어쩌면 최선은 “느낌 좋은 어른” 정도가 아닐까. 전문 번역가 박산호는 세 가지 예를 드는데, 첫째 “나이에 상관없이 예의를 깍듯하게 갖추는 사람들”이고, 둘째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고, 셋째 “자기 관리가 잘된” 사람들이다. 물론 말만 존대하는 게 아니라 “격을 갖춰 상대를 존중”하고, 지갑을 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어 상대를 배려하고, “욕망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충실”하여 맑은 안색과 눈빛을 갖춘 이들을 만나려면,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한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함께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나이 한 살 먹는 일이 더는 억울하지도 서글프지도 않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 하나만 더 꼽자면 나를 잘 알게 된다는 점 아닐까. “오랜 시간 ‘나’라는 사람과 같이 살다보니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색과 옷과 화장이 나에게 잘 어울리며, 내가 어떤 분위기에 끌리고, 어떤 사람은 참을 수 없이 불쾌한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한지 알게” 되니 말이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로 10대나 20대를 원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는데, 한 사람의 몫을 온전히 감당하는 어른의 삶이 마음처럼 쉽지 않지만 “인생이 다정해지는 시기”도 이때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MUSICAL
뮤지컬 <라이온 킹> 공연 모습

보내는 해,
무대로
즐겨볼까

12월,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물론 연말을 보내는 가장 따뜻한 방법은 그리운 이들을 만나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여기에 다채로운 연말 공연과 함께 한다면, 한 해의 마지막은 더욱 즐거운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연극 <진실X거짓> 포스터

공연 : 11월 6일~2019년 1월 27일
장소 :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배종옥, 김정난, 정수영, 양소민, 김진근, 김수현, 이형철, 이도엽 등

연극 <진실X거짓>

‘연극열전7’의 세 번째 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진실X거짓>은 2012년 몰리에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공연은 진실과 거짓을 이야기한다. 진실과 거짓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작품이 택한 형식은 바로 연작 공연. 작가가 2011년 발표한 <진실>과 2015년 발표한 <거짓>을 연작 형태로 묶어 한국에서 초연하게 되었다.
<진실>과 <거짓>, 이 두 편의 공연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을 보여주며, ‘불편한 진실’과 ‘친절한 거짓’에 대해 말한다. <진실>에서는 배우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여행을 떠난 알리스와 미셸의 고민, <거짓>에서는 저녁 파티를 앞둔 폴과 알리스, 미셸과 로렌스 부부의 고민이 펼쳐진다.
두 공연의 내용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둘 중 어떤 것을 먼저 관람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두 공연을 모두 보았을 때, 진실과 거짓의 양면성을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배우 배종옥이 대본을 읽고 단번에 출연 결심을 해 알리스 역에 이름을 올렸고, 김정난이 같은 역으로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 포스터

공연 : 11월 2일~2019년 1월 20일
장소 : 디큐브아트센터
출연 : 안재욱, 이건명, 강필석, 구원영, 김호영, 이석훈, 정욱진, 찬동(브로맨스), 이은율, 임강희 등

뮤지컬 <광화문 연가>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첫사랑의 추억을 그리고 있는 애틋한 무대다. 故이영훈 작곡가의 명곡 ‘광화문 연가’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이영훈 작곡가의 주옥같은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옛사랑’, ‘소녀’, ‘붉은 노을’, ‘슬픈 사랑의 노래’ 등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한 작품이다.
공연계 스타 창작자로 손꼽히는 고선웅 작가, 이지나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의 협업으로 지난해 첫 선을 보인 <광화문 연가>는 이들의 강점이 잘 살아난 무대로 흥행몰이를 했다. 이야기는 고선웅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데, 중년의 명우가 숨을 거두기 직전 추억 여행 가이드 월하를 따라 첫사랑 수아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이다. 과거로 돌아가게 된 명우는 환상과 기억,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중년 명우는 안재욱, 이건명, 강필석이 맡아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젊은 명우는 정욱진과 찬동(브로맨스)이 연기한다. 또한 <페스트>, <미인> 등에서 서태지, 신중현의 음악을 편곡하며 극찬 받았던 김성수 음악감독의 감각적인 편곡으로 인해 음악적인 즐거움을 풍성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라이온 킹> 포스터

공연 : 11월 7일~12월 25일 / 2019년 1월 9일~3월 28일
장소 : 대구 계명아트센터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뮤지컬 <라이온 킹>

무대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며 공연계의 새로운 역사를 쓴 뮤지컬 <라이온 킹>이 개막 20주년을 맞아 최초로 인터내셔널 투어를 펼친다. 그 일환으로 한국에서도 <라이온 킹>의 위엄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1월 개막한 대구 공연은 오픈 당일에만 약 2만 8천 장을 판매해 지방 공연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이후에는 서울, 부산 투어로 그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라이온 킹>은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을 표방하며, 그 해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첫 선을 보였던 <라이온 킹>을 무대화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디즈니는 보란 듯이 완벽한 성공을 이끌어냈다. 그 일등공신은 바로 연출가 줄리 테이머. 누구보다 인형극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환상적인 기법으로 무대 위 동물들에게 멋진 숨을 불어넣었다.
그에 따라 배우들은 자기 신체와 200여 개에 달하는 퍼핏(신체 일부에 결합해 조정할 수 있는 인형)을 결합해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동물의 모습을 구현해냈다.
<라이온 킹>의 무대 예술 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이다. 팝의 전설이라 불리는 엘튼 존과 팀 라이스의 협업,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작곡가 레보엠이 그려낸 생생한 아프리카의 숨결, 영화 음악의 대부 한스 짐머의 감성까지 더해지며, 히트 뮤지컬의 진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글. 박태근(북칼럼니스트), 나윤정(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