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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 Culture

이야기가 있는 레시피

염도와 온도의 아름다운 조화

젓갈

젓갈은 잃었던 입맛도 되찾게 하는 신통력을 지녔다. 따끈한 쌀밥에 속 깊은 젓갈을 살짝 얹어 먹으면 천하의 별미다. 어패류가 풍성한 우리나라에서 이를 소금에 절여 저장해 먹는 젓갈이 발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젓갈을 쓰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이 달라지기에 김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재료로 손꼽힐 만큼 젓갈이 지닌 힘은 상상이상이다.

한반도의 역사와 함께해 온 발효음식

‘젓갈 가게에 중이라’,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절이 망하려니까 새우젓 장수가 들어온다.’ 등 젓갈에 관한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젓갈을 즐겨먹은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기 위한 폐백 음식으로 해(醢)를 준비했다고 나온다. 여기서 ‘해’는 오늘날의 젓갈을 의미한다. <고려도경>에도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던 음식이 젓갈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젓갈 제조법이 발달했고, 궁중, 일반 가정에서도 밑반찬으로 즐겨 먹었다. 해안지방에서 만든 젓갈이 보부상들에 의해 전국 각지로 퍼졌고, 대합젓, 잉어 젓, 토하젓, 조기젓 등은 명나라 조공 무역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670년경 조선 시대 영남지방 사대부의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음식디미방>에는 게젓 담그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고, 1800년 말경 <시의전서>에도 조기젓, 새우젓, 명란젓을 담그는 방법이 간단하게 기술되어 있다. 또 <규합총서>의 ‘주식의’ 편에는 어육장을 담는 큰 독을 묻고 지키는 법과 청장을 만드는 법,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들어 독에 붓는 법 등이 설명되어 있다. 농업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임원십육지> 가운데 음식에 대한 <정조지>에는 ‘동국침해법’이라고 하여 살아있는 꽃게를 소금물에 넣어 저장하는 꽃게장을 <산림경제본>의 문헌에 인용해 설명하고 있을 정도다.

쌀밥을 보완해 주는 기특한 반찬

젓갈은 어패류의 내장에 소금을 가해 부패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어패류 자체의 효소와 외부 미생물의 효소 작용으로 육질을 분해해서 독특한 맛과 풍미를 내는 발효음식이다. 젓갈의 가장 큰 특징은 수산물을 소금에 충분히 절인 다음 푹 삭히는 데 있다. 젓갈은 초기에는 주로 자기 소화효소(Autolysis)에 의해서, 후기에는 세균이나 효모의 작용에 의해 숙성된다. 그리고 숙성되는 동안 단백질이 아미노산과 핵산으로 분해되면서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젓갈이 짭짤한 맛 때문에 밥만 많이 먹게 하는 음식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영양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젓갈은 소화 흡수가 잘 되고 양질의 단백질과 칼슘, 지방질, 무기질 등의 영양분이 풍부해 건강식품으로도 그만이다.
특히 칼슘 함량이 높고 알칼리성 식품이기 때문에 체액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또 젓갈은 식욕을 돋우고 간을 보호하며 각종 영양소와 비타민을 함유해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젓갈을 기특한 음식으로 여기는 데에는 단백질 소화효소와 지방분해 효소가 풍부한 데 있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필수아미노산을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젓갈은 그 지역에서 잡히는 수산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새우가 많이 잡히는 서해안에서 새우젓이 발달하고, 명태가 흔한 동해안에서 명란젓이나 창난젓을, 멸치와 갈치가 흔한 남해안에서 이를 젓갈로 많이 담그는 이치이다. 맛은 대체로 북쪽 지방에서 남쪽 지방으로 내려올수록 짠데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짠 젓갈이 입에 밴 남쪽 지방 사람들이 보면 싱겁기 짝이 없는 북쪽 지방의 젓갈은 그저 생선을 삭힌 음식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오늘 젓갈을 먹었는지를 물었을 때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치를 먹었다면 그 안의 젓갈을 먹었을 것이고, 한식을 먹지 않았더라도 파스타, 샐러드, 동남아 음식에 어떤 형태로든 젓갈은 활용되었을테니 말이다. 변화된 식생활과 인식 속에서도 젓갈은 우리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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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글로벌 한 젓갈 문화
  • 안초비(Anchovy) : 이탈리아에서 식자재로 애용하는 안초비는 생선을 묽은 소금물로 씻어서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뿌려 무거운 것으로 누른 뒤 뚜껑을 덮어 수개월 동안 서늘한 곳에 저장한 것이다. 월계수나 후추, 정향 등 향신료를 넣어 발효하는데, 다 익은 후 배를 갈라 뼈를 제거하고 둘둘 말아서 병에 꼭꼭 채우고 올리브유를 부어 밀봉해둔다. 샐러드, 파스타, 술안주 등으로 활용한다.
  • 시오카라(Shiokara) : 일본의 젓갈이다. 생선을 겨울에 두고 먹기 위해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생선 내장을 소금에 절여 발효한 음식으로 오징어로 많이 만들지만, 지역에 따라 정어리, 가다랑어, 고등어 등의 내장을 쓰기도 한다. 한국의 젓갈과 마찬가지로 요리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반찬으로도 즐겨 먹는다.
  • 느억맘(Nuoc mam) : 멸치액젓, 까나리액젓과 비슷한 베트남의 생선 젓갈이다. 생선에 소금과 설탕을 넣고 발효한 후 윗부분의 맑은 물을 걸러낸다. 빵이나 튀김을 찍어 먹기도 하고, 쌈에 넣는 양념장으로도 즐긴다.

김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재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김장철도 함께 왔다. 김치는 같은 재료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재료 배합이나 비율에 따라서도 맛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담그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서도 김치 맛은 달라진다. 그 이유는 바로 젓갈 때문이다.
서해안의 해산물과 비옥한 토지에서 다양한 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는 서울, 경기지역에서는 주로 새우젓과 조기젓을 사용한다. 그래서 짜지 않고 담백하며 깔끔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충청도 지역은 경기 지역과 비슷하게 새우젓을 주로 사용하지만, 황석어젓도 많이 사용한다. 황석어젓은 구수한 뒷맛이 일품이라 자극적이지 않은 시원한 맛을 내는 데 제격이다. 반면 전라도 김치는 젓갈과 양념을 많이 사용해 맵고 짠 것이 특징이다. 따뜻한 기온 탓에 김치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멸치젓이나 갈치속젓을 많이 사용한다. 경상도 지방 역시 양념을 많이 사용해 맵고 짠 편이다. 주로 멸치젓을 사용하며 김칫소를 버무릴 때 간을 해둔 생갈치를 넣기도 한다. 그래서 검은 빛을 띠고 처음에는 비린내가 나지만 익으면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낸다. 반면 강원도는 김치에 젓갈을 많이 쓰지 않고 동해의 싱싱한 생태와 오징어를 넣는다. 배추김치에 소를 넣는 것은 중부지방과 같으나 생 오징어채와 적당히 말려서 잘게 썬 생태를 김칫소에 버무려 넣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고춧가루로 버무려 켜켜이 집어넣는다. 비슷한 듯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김장용 젓갈에 대해 알아보자.

김장김치에 가장 많이 쓰이는
젓갈 Best 5

  • 새우젓

    작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로 서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젓새우를 주로 이용한다. 새우젓은 담그는 시기에 따라 오젓(5월에 잡은 새우로 만든 젓갈), 육젓(6월에 잡은 새우로 만든 젓갈), 추젓(가을에 잡은 새우로 만든 젓갈) 등으로 구분된다. 새우가 가장 살이 올라 맛이 있는 음력 6월에 잡아서 담그는 육젓을 으뜸으로 꼽는데, 담백하면서도 덜 짠 데다 김치에 잘 녹기 때문에 김장용 젓갈로 가장 많이 쓰인다.

  • 멸치젓

    멸치젓은 새우젓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젓갈로 전체 젓갈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멸치젓은 남해안 지방에서 많이 담가 먹는다. 멸치젓은 지역별로 담그는 시기와 횟수가 조금씩 다른데, 남해안에서는 음력 3~5월에 한 번 젓갈을 담그고, 동해안에서는 음력 4월과 7~8월에 두 번 젓갈을 담근다. 멸치가 삭으면 맑은 웃물이 고이는데 이것을 생 젓국이라 한다. 생 젓국은 따로 떠서 조미료로 사용하는데, 이때 비린내가 남아 있으면 아직 숙성이 덜 된 것이다. 액젓은 6개월 이상 멸치가 완전히 분해될 때까지 숙성시킨 것을 말한다.

  • 조기젓

    조기젓은 5~6월경 조기가 많이 생산될 때 담았다가 가을부터 먹는데, 산화되면 좋지 않으므로 목이 좁은 항아리에 담아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저장한다. 조기의 입과 아가미에 굵은 소금을 가득 넣고 항아리 밑에 소금을 깐 다음 조기를 나란히 놓고 소금을 켜켜이 뿌린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항아리에 70% 정도 조기를 담은 후에 대나무 쪼갠 것을 소독하여 얼기설기 넣어 끓여 식혀 놓은 소금물을 조기가 찰 때까지 붓고 밀봉한다. 짜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내는 덕분에 서울, 경기지역에서 주로 쓴다.

  • 갈치속젓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히는 싱싱한 갈치의 내장을 소금에 절여 담그는 젓으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많이 담가 먹는다. 잔 갈치를 깨끗이 씻은 뒤 토막 내어 소금을 켜켜이 뿌려서 용기에 담아 밀봉한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둔다. 감칠맛이 있어서 생 젓에 다진 풋고추를 넣고 무쳐 반찬으로 만들기도 한다. 발효와 숙성을 거쳐 잘 삭은 젓갈은 김치 담그는 데 사용하며, 갈치속젓에 갖은양념을 넣어 무쳐 먹거나 쌈장 대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 황석어젓

    황석어와 참조기는 같다. 그런데 서로 바꾸어 부르면서도 황석어젓을 참조기 젓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황석어 식해라고도 하는데 5~6월이 황석어젓을 담그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김치를 담글 때는 황석어젓의 살만 따로 저며서 소에 섞고, 나머지는 달여서 체에 밭친 다음 김칫국물에 부으면 깔끔하다.

글. 한진영(푸드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