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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은     살 아 보 는 거 야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
느린 여행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 집을 구해서 ‘한달살이’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에어비앤비 같은 하우스 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해 아예 해외에서 한달살이를 시도하는 이들도 많다. 빠르게 유명 관광지만 돌아보는 패키지여행과는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현지에서 ‘살아보는’ 여행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다시 일상으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하우스 쉐어링 서비스 기업 에어비앤비의 광고 카피다. 사실 여행은 ‘사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들을 잠시 스쳐가는 것이 여행의 본질. 하지만 요즘 여행의 트렌드는 일상을 벗어나서 다시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의 겉만 핥는 여행이 아니라 마치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한번 살아보는 느린 여행.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개념이 ‘한달살이’라는 용어로 정착된 듯하다.
‘한달살이’란 말 그대로 한 달 동안 낯선 공간에서 살아보는 것으로, 현지에 오랫동안 지낼 장소를 확보해두고 그곳에서 마치 현지인처럼 지내는 여행을 말한다. 자연풍광이 좋은 곳에 마음을 내려놓고 한 장소에서 편하게 머무르다 돌아오는 소박한 여행이다. 장소가 바뀌었을 뿐 살아가는 것은 원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그날그날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만이다. 어떤 날은 집 앞 골목을 산책하고, 어떤 날은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흐린 날은 방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종일 빈둥거려도 좋다. 왜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이런 평범한 생활을 하냐고? 서 있는 장소가 다르면 풍경도 생각도 달라지니까.

한달살이의 중심, 제주도

우리나라에서 한달살이 앞에는 거의 ‘제주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만큼 제주도는 지난 몇 년간 한달살이 트렌드의 중심 지역이었다. 2013년 가수 이효리가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소길댁’으로 살면서 자신의 근황을 SNS에서 공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방송이나 SNS에서 그녀의 삶을 엿보며 ‘나도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런 욕망이 제주도 한달살이 유행으로 이어졌다. 연령과 대상도 다양하다.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가족들도 있고, 직장을 관두고 이직을 준비하면서 혼자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달살이에서 중요한 것은 비용보다 시간이다. 직장인들에게는 한달살이가 거의 불가능 하지만,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두달살이, 혹은 일년살이를 시도하기도 한다. 원래 제주도는 3~4일의 짧은 일정으로는 그 매력을 모두 느끼기가 어렵다. 느긋하게 제주도를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 이국적인 환경에서 재충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한달살이에 열광했다. 원래 제주도에는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연세’라는 특이한 부동산 시스템이 있는데, 한달살이가 유행하면서 많은 주택들이 월 단위로 계약되었고, 가격도 급등했다고 한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의 겉만 핥는
여행이 아니라
마치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한번 살아보는
느린 여행.

휴식과 여유가 있는 날것의 여행

제주도에서 시작된 한달살이는 통영, 속초 같은 국내 다른 지역은 물론, 해외까지 확장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하우스 쉐어링 서비스 덕분에 외국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간 투숙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비용보다 중요한 것은 거주의 형식이다. 일반 주택에 머무르는 것은 호텔에서 투숙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주택가에서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보다 가깝게 경험할 수 있으며, 현지 식재료로 직접 요리를 해볼 수도 있다. 에어비앤비는 이방인으로서 겉만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마치 현지인처럼 그곳에서 살아보라고 속삭인다.
그것은 낯선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만들어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요즘 사람들이 한달살이를 떠나는 이유는 ‘휴식’과 ‘여유’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은 짧은 휴가 기간을 짜내서 어렵게 여행을 떠난다. 길어야 일주일. 해외로 떠나면 실제 여행기간은 4~5일에 불과하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정보는 부족하다. 자칫 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허비하기 십상.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은 이미 검증된 여행코스와 유명 관광지만 서둘러 둘러보게 된다. 무엇보다 모처럼 큰돈을 써서 왔는데 짧은 일정으로 어떻게든 많이 봐야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 그래서 무리한 일정으로 강행군을 하게 되고, 즐거운 기억보다는 지친 몸만 이끌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휴식과 재충전이라는 여행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한달살이는 이런 인스턴트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날것의 여행이다.
사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 하루를 떠나더라도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며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휴식이 될 것이다.

글. 이상우(문화평론가, 협성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