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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그러나 변함없는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  블루(Blue)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는 한자성어는 ‘홀로 푸르다’라는 뜻으로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 늘 변함이 없다는 의미다. 이름도 없는 색상에서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되기까지, 가장 기피하는 색상에서 왕실을 대표하는 색상이 되기까지, 청청(靑靑)한 이 빛깔은 구구절절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늘 꿋꿋했다.

| 성지선(문화칼럼니스트)

세계의 마음을 빼앗은 컬러, 블루

1993년 6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부인과 자식을 제외하고 다 바꾼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신경영을 펼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작업은 바로 CI의 교체. 한문을 영문으로 바꾸고 계열사의 이름도 모조리 삼성으로 통일하는 등 대대적인 혁신이 있었지만,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로고의 컬러인 청색이었다. 오늘날에도 건재한 이 로고의 컬러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안정감’과 ‘신뢰’로,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세계 제일주의와 삼성의 책임감을 상징한다.
굴지의 기업이 수많은 컬러 중에서도 블루를 고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블루 컬러는 전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색상이다. 실제로 영국, 독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홍콩 등 10개국을 대상으로 한 선호도 조사에서 블루 컬러는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냉정하고 침착하며 심신의 회복력을 돕는 블루 컬러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블루 컬러는 신경계의 흥분을 가라앉혀 혈액 순환에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활력을 불어넣고 신진대사를 증진시킨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창공을 바라볼 때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신뢰감을 주는 긍정의 컬러인 까닭에 면접에 임하는 사회 초년생들은 블루 계열의 넥타이나 셔츠를 선택하기도 하고, 신뢰감의 상징적인 자리인 뉴스 앵커에게도 많이 권장하고 있다.

블루 컬러는 신경계의 흥분을 가라앉혀
혈액 순환을 회복시키는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활력을 불어넣고 신진대사를 증진시킨다.

blue

존재하지 않았던 색깔

지금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로 자리매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블루 컬러는 중세까지 존재하지도 않던 색이었다. 우선 이 컬러는 자연 속에서 찾기 어려웠다. 하늘과 바다가 블루 컬러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색을 자주 바꾸는 데다, 파랑새나 블루베리 등 동식물에서 나타나는 블루 컬러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파란색보다는 보라색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블루 컬러를 그린 컬러의 변종이라고 생각해 이름도 따로 짓지 않았고, 중국 ・ 일본 ・ 유대인들 또한 역사적으로 파란색을 언급한 일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류 최초의 회화로 알려져 있는, 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도 검정, 빨강, 갈색, 황토색, 흰색 등 다양한 색깔이 발견되지만 청색은 없다.
블루(Blue)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부터 지금의 블루 컬러를 칭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어의 조상인 르완다어에서는 얼음, 우박이라는 뜻의 ‘bura’와 장작을 팬다는 뜻의 ‘(w)asa’를 합쳐 블루 컬러를 뜻하는 ‘blæwaz’라는 말을 썼다. 직역하면 ‘얼음을 패다’라는 뜻으로 얼음을 깼을 때 일어나는 물보라나 얼음이 깨지고 나서 보이는 물의 색깔을 의미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맑은 청색이 아니라, 탁하고 옅은 청회색이나 흰색 계열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블루 컬러의 암울한 시대

자연에서 얻기 어려운 색상이라는 것은 염료로 얻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나마 채도가 높은 청색을 얻기 위해서는 인도나 중국 등지에서 나던 마디풀과 식물인 쪽・산쪽풀, 혹은 유럽산 겨잣과 식물인 대청을 발효시켜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야 했는데, 기술적 한계로 인해 순도 높은 청색을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바라보는 블루 컬러는 어둡고 칙칙해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색깔일 뿐이었다.
어쩌면 ‘블루(Blue)’가 우울감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로 쓰이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단적으로 ‘우울하다(Feeling blue)’는 표현이나, 결혼을 앞둔 남녀들이 겪는 심리적 불안감을 뜻하는 ‘메리지 블루(Marriage blue)’, 우울한 날을 의미하는 ‘블루 데이(Blue day)’ 등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 유행했던 음악 장르인 ‘블루스(Blues)’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백인의 폭압, 짝사랑, 원치 않는 임신이나 도박, 자연재해 등 가슴 아픈 사연들을 주로 가사에 담았던 흑인들의 한이 서린 음악이었다.
이런 가설도 있다. 항해 도중 선장이나 장교가 사망하면 선원들은 블루 컬러의 깃발을 게양했는데, 사망한 이의 새파랗게 질린 피부색이나 을씨년스러운 바닷바람에 춥고 피곤해진 안색을 표현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 관습이 고착화되어 ‘블루(Blue)’라는 단어가 불행하고 우울한 감정을 담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영원한 파랑

12세기에 이르러 블루 컬러는 르네상스를 맞게 된다. 색상에 관심이 많았던 중세 ‘생 드니’ 수도원장 쉬제(Suger, 1081~1151)는 자신의 부속 교회를 풍부한 색채를 활용해 재건축했는데, 이때 보석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파이어의 청색에 주목했다. 그는 교회를 사파이어의 신성한 색으로 가득 채우리라 결심하고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신비로운 푸른빛 계열로 가득 채웠다. 이 사례는 당시 성직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이후 많은 고딕 양식의 건축에 적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청색 염료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기술적 발전이 이뤄진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성모 마리아는 블루 컬러의 망토를 두르고 성화에 등장했으며, 13세기에 이르러서는 프랑스의 루이 9세와 영국 헨리 3세가 왕을 상징하고자 블루 컬러의 의상을 착용했다. 국왕의 컬러를 쫓기 위해 귀족들은 구하기 어려운 블루 컬러로 드레스를 염색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고, 초상화에 일부러 어두운 피부색의 흑인 시종을 함께 그려넣어 푸른 옷을 입은 자신의 고귀한 모습과 대비하기도 했다.

고급스러운 블루 컬러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차분하고 냉정하며 믿음을 주는 컬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까닭에 높은 품질을 상징하는 컬러로 인식되기도 한다.

성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파산하는 걸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청금석 물감을 구입해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채색했다. 청금석을 아주 곱게 갈아 만든 물감은 1700년대 초반, 황산제일철과 잿물을 섞다 발견된 프러시안블루가 탄생할 때까지 내로라하는 예술가에게 선망의 색상으로 손꼽혔다.
고급스러운 블루 컬러는 현대에 들어와서도 차분하고 냉정하며 믿음을 주는 컬러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까닭에 높은 품질을 상징하는 컬러로 인식되기도 한다.
1923년경 다우존스 기자로 재직하던 올리버 진골드는 2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는 몇몇 주식을 ‘블루칩’이라 명명하는데, 이는 도박사들이 사용하는 블루・화이트・레드 컬러 칩 중 블루 컬러가 가장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데서 딴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INSEAD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와 러네이 모본 교수가 창안한 경영학 용어 ‘블루오션(Blue Ocean)’은 경쟁자가 뜸한 무경쟁시장을 일컫는 말로, 물고기가 많이 잡힐 수 있는 깊고 푸른 바다를 시장에 빗댄 단어다. 현대 사회에서 블루 컬러는 거대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신뢰와 희망을 주는 상징으로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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