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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될 거야’라는
  대신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보라’

얼굴없는 웹툰작가 김보통

입사 4년 만에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우연히 시작한 연재만화 ‘아만자’(암환자 발음 그대로의 표기)로 단숨에 촉망받는 웹툰작가 반열에 오른 김보통 만화가. 수필가에 이어 강연가라는 수식어까지 가지게 된 김보통 작가가 오늘 문득 궁금 하다.

| 신미경(방송작가) 사진 | 선규민

Q __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작가로 유명하다. ‘만화계의 프라이머리’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던데,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나.

두 가지다. 군대시절 탈영병을 잡는 헌병이었다. 그때 탈영병 여러명을 체포했는데, 그 당시 나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또 하나는, ‘회사 관두고 뭐 할거냐’고 묻던 회사 동료들이 내 만화를 재미있게 봤으면 싶어서다. 어차피 만화가는 만화로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언젠가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 가면을 벗을 생각이다.

Q __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품을 포함해 근황이 궁금하다.

웹툰 ‘DP. 개의 날’의 경우, 영화는 출연자 캐스팅에 들어갔고,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올 봄에는 신간 2권이 나오고, 본업인 만화는 장편 연재를 곧 시작하게 될 것 같다.

Q __ <아만자>,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살아, 눈부시게!> 등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당신은 괜찮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무작정 위로만 하기는 싫다. 당신의 고민은 사회의 문제고, 구조의 문제고, 타인과 연결된 문제니까, 오롯이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짚어주고 싶다.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동글동글한 강아지, 고양이, 너구리 캐릭터가 장난치듯 건네니까, 독자들이 웃으면서 받아들여 주는 것 같다.

“당신은 괜찮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무작정 위로만 하기는
싫다. 당신의 고민은
사회의 문제고, 구조의 문제고,
타인과 연결된 문제니까,
오롯이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짚어주고 싶다.
CARTOONIST KIMBOTONG
Q __ 암환자나 탈영병을 잡는 헌병처럼 무거운 주제들로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있나.

한 일본 작가가, ‘작가의 의무는 독자를 현실에서 눈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이게 현실이야 하고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싶다. 작가로서 계속 독자에게 질문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고, 그 일에 수명을 쓰고 싶다.

Q __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지금의 어른들에게 미니 북 <나는 쉬어야해>를 권한다면.

‘할 수 있을 때 더 일해야지 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전쟁 직후 국가 재건이 목표인 시점에선, 앞만 보고 달리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그 과정이 ‘쉼’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랬으면 좋겠고.

Q __ 당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가 있다면.

응원은 하고 싶지 않다. 응원이란 게 더 열심히 하라는 뜻 아닌가. 더 열심히 안해도 된다. 응원대신 해주고 싶은 말은, 뭐든 의심하라는 거다. 시대가 발전하고 제도가 생겨난 건 '이대로 괜찮은가?' 하고 의심한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을 보면서 안심이 되는 점은, 이미 의심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세대는 의심하고 행동하고 심지어 파괴해 가면서 그만큼 나아진 세상을 만나게 될 거다.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
나가는 게 중요하다.
내가 보고 있는 범위가
돈으로 한정되어 버리면,
한쪽에 몰입해 나머지를
모두 버리게 된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느껴보길 바란다.
Q __ 저서에서 행복도 셀프, 받아들이는 것도 셀프, 움직일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셀프라고 밝힌 바 있다. 결정의 순간,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본인은 어떻게 하나.

고민은 스스로가 아니면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어떤 문제를 두고, ‘베스트를 선택하지 못하는 거 아닐까’라고 망설여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설사 베스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후회를 피할 수 없다면, 후회하되 미련은 남기지 말자는 쪽이다. 그러다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상처도 언젠가 만화나 수필의 소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Q __ 금전적인 부가 아닌 '마음의 부'를 쌓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자신만의 세상을 넓혀 나가는 게 중요하다. 내가 보고 있는 범위가 돈으로 한정되어 버리면, 한쪽에 몰입해 나머지를 모두 버리게 된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느껴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다녀도 좋겠다. 다양성의 가치를 깨우친다면,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Q __ 평소 새마을금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친근하고 친숙하다. 친근하고 친숙한 이미지는 ‘서민금융’이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중금리라는 단어도 함께 떠오른다.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돌아가는 길에 새마을금고를 만나면 당장 통장을 개설하겠다.

Q __ 누구에게나 처음의 순간이 있다. 기억에 남는 당신의 설렜던 ‘처음’은 언제인가.

처음 단행본을 계약하러 왔던 곳이 우연히도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바로 이 카페다. ‘세상에 내가 책을 낸다고?’ 정장을 차려입고 각잡고 앉아, 덜덜 떨면서 첫 책 계약을 마쳤다. 전 직장 급여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지만, 새로운 시작이었고 출발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눈 아래쪽이 찌릿찌릿하게 경련이 올 만큼 놀라운 경험이었다.

Q __ 김보통의 내일은 어디서 시작되나.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학원물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청소년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이 죽는다면,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에 대해 고민하고 그려나갈 생각이다. 참, 새마을금고에 들러 통장을 만드는 것도 계획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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