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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벚꽃
말고

울진 후포항

봄이 오나 보다 하면 시기라도 하듯 코끝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꽃망울은 금세라도 톡 터질 듯한데. 삐죽이 고개 내민 햇빛에 코트 대신 가벼운 외투로 갈아입고 어디라도 떠나야겠다면, 울진이 제격이다. 꽁무니 빼며 돌아서는 겨울바다도 보고, 언덕배기 망양정에서의 사색도 좋겠다. 등기산 봄볕을 밟으며 자박자박 걷는 느린 산책이 어울리는 곳이니까.

글+사진 | 홍유진(여행작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란 의미의 망양정
숙종이 사랑한 정자,
망양정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해변에 자리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소나무 숲길을 올랐다. 숙종은 망양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관동팔경 가운데 제일이라 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내렸고, 그도 모자라 정조와 함께 어제시(御製詩)도 지었다. 정철은 <관동별곡(關東別曲)>을 통해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했고, 정선(鄭敾) 역시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으로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 시대의 핫 플레이스라 할 수 있겠다. 천천히 걸어 올라간 야트막한 언덕 정상에 새초롬한 모습의 정자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바다를 향해 들어앉아 여행자를 맞는다. 정자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에 가슴이 탁 트였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동해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붉은 태양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망양정에서만큼은 인증샷을 찍는 찰칵 소리도 잠시 멈추었으면 한다. 그저 말없이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다 내려와도 잔걱정까지 그 바람에 씻기는 기분이 들 테니 말이다.

등기산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에메랄드빛 바다와 웅장한 모습의 울진 갓바위
아기자기 어촌 마을 산책,
후포항

울진에서 딱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후포항을 꼽을 것이다. 활기찬 아침을 여는 대게 위판장에서는 어부들의 분주한 일상을 코앞에서 생생하게 만나고,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돌듯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등기산 공원과 TV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 벽화마을도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핫한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입출항이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분주히 오가는 고기잡이배들과 때에 맞춰 마중이라도 나가듯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 떼는 후포항에서도 놓치기 아까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대게의 성지인 울진의 대게 위판장은 오전 8시 30분부터 시작한다. 고기잡이배에서 밤새 잡아 온 대게로 가득 찬상자를 내리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그 상자를 받아 공판장 바닥에 줄을 맞춰 대게를 나열한다. 나열이 끝나면 호루라기를 불며 경매가 시작되는데 눈 깜짝할 새,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끝이 난다. 대게는 8개의 다릿마디가 대나무를 닮았다 하여 대게라 불리는데, 3월은 대게가 통통하게 살이 올라 가장 맛이 좋은 시기다. 대게는 열을 가할수록 살이 질겨지고 짠맛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어 찜통에 통째로 살짝 쪄 금세 먹는 게 좋다. 몸통은 참기름 몇 방울 톡톡 떨어트려 따끈한 밥과 함께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대게가 지역의 명물이라는 울진에 왔으니 안 먹고 후회 말고, 먹고 나서 감동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 울진 대게 위판장에서 경매를 준비하는 대게들
  • 망망대해에 떠오른 망양정의 일출
후포항의 아침을 여는 고깃배들
울진에서 딱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후포항을 꼽을 것이다.
활기찬 아침을 여는 대게 위판장에서는 어부들의 분주한 일상을
코앞에서 생생하게 만나고,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돌듯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등기산 공원과 ‘백년손님’ 벽화마을도 둘러볼 수 있으니 말이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인증샷을 남기러 오는 방문객들로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다양한 색깔로 방문객의 시선을 끄는 은어다리 야경
  • TV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 주인공들이 그려진 벽화마을
바다 위를 걷는 길,
등기산 스카이워크

지난해 개장한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새로운 후포 명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전체 길이 135m 중 아래가 훤히 보이는 강화유리 설치 구간은 57m에 달한다. 15t 무게도 견딜 만큼 튼튼하다지만 바닥이 워낙 투명하다보니 ‘무섭지 않다’며 큰소릴 쳤던 여행객들도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조심스레 건너곤 한다. 등기산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도착하면 탁 트인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데다 조형물 앞에서 인증샷도 남길 수 있어 연령대 구분 없이 여행객 모두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스카이워크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면 바로 등기산 공원으로 이어진다. 동네 뒷동산 산책하듯 가볍게 걸어 30분이면 충분하다. TV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덕분에 ‘백년손님’을 테마로 한 후포 벽화마을과 90년대 TV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인 작은 집도 여전히 인기 많은 볼거리 중 하나다.

  • 드라마 ‘폭풍속으로’의 세트장인 어부의 집
  • 110년 역사의 죽변 등대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죽변항

바위 절벽에 작은 주황색 지붕집이 낭만적이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 ‘어부의 집’은 2층으로 되어 있고, 내부 공간까지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세트장 뒤로 내려다보이는 해변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어 ‘하트 해변’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SNS 상에서 인증샷 찍기에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커플여행의 성지가 되었다.
‘어부의 집’에서 3분 거리에는 죽변등대가 있다. 죽변등대는 죽변항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주변에서 가장 전망좋은 곳으로 꼽힌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해상을 감시하는 망루를 설치했고, 1910년에 등대를 세웠다. 등탑 건물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됐다.
일상을 유지하는 일은 끝없는 감정노동의 연속이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스스로 충전을 해 주어야 할 때가 온것이다. 올해 봄은 예년보다 수일 빨라질 거라고 한다. 일상을 멈추고 한 뼘이나 더 일찍 다가온 봄을 맞으러 지금 울진으로 떠나야 할 이유다.

TIP
  • 도심의 낮보다 더 아름다운 울진의 밤

    여행의 낭만에 방점을 찍는 건
    야경이다. 도심의 그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한 매력의 은어다리 야경은
    하늘을 나는 물고기가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은은한 불빛을 뿜어내며 빛나는 은어다리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싶다면 삼각대는 필수다.

  • 달인의 비법이 깃든 ‘비빔짬뽕밥’

    죽변시장 초입에 위치한 ‘제일반점’은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으로 유명해진
    곳으로 비빔짬뽕밥이 유명하다.
    오징어와 갖은 채소를 넣고 새빨갛게
    만든 비법의 짬뽕소스를 밥 위에
    올린 후 계란 프라이를 얹어 낸다.
    카운터에 가서 주문과 계산을 마친 후
    셀프로 가져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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