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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려는 자  VS  속지 않으려는 자

누구나 속기 전에는 생각한다. 나는 안 당하겠지. 저 정도는 금세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속절없이 당하는 이들은 넘쳐난다. 대검찰청의 ‘2018범죄현황’ 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24~25만건의 사기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사기피해 가해자의 10명 중 6명은 아는 사람이다. 알고서 속는 사람은 없다는데, 우리는 왜 자꾸 뒤통수를 맞는 걸까.
  • | 강현식(심리학칼럼니스트)
피싱 메일에 속을 뻔하다

201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범죄 유형별 국가 순위’를 살펴보면 한국은 사기범죄 1위 국가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사기피해를 당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본인이 당하기 전까지는 ‘속은 사람이 바보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사기를 당하는 것이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고 한다. 뒤통수를 맞기 쉬운 심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경찰서로부터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공문서였다. 경찰마크와 경찰서장의 직인이 찍혀있는 그럴 듯한 공문서. 구체적인 위반 사항은 첨부파일을 열어보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위법을 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했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고 첨부파일을 열려는 순간, 발신자의 메일 주소가 눈에 띄었다. 경찰을 연상시킬만한 메일 주소가 아니었다. 경찰서 홈페이지를 검색해보니 역시나 메일 주소가 달랐다. 피싱 메일(fishing mail)이었던 것이다. 만약 첨부파일을 열었더라면 컴퓨터에는 악성코드가 깔려 개인신상정보가 유출됐거나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SNS메시지를 통해 지인행세를 하며 ‘문화상품권’을 대신 결제해주면 바로 입금을 해주겠다는 식의 사기수법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가족인척 급전을 요구하는 것에 당하거나 계좌가 범죄에 악용됐다며 출금을 요하는 전화금융사기도 부지기수다.

사람들이 속는 두가지 이유

미끼로 물고기를 낚듯이 사람을 낚는다고 하여 ‘피싱(fishing)’으로 불리는 이런 사기수법은 날로 진화한다. 처음에는 전화(보이스피싱)였다가, 그 다음은 문자(스미싱), 이제는 메일과 스마트폰 어플까지 이용한다.
방법은 바뀌어도 사람들이 속는 이유는 동일하다. 첫번째는 불안이다. 검찰이나 경찰처럼 권력기관을 사칭하여 불안하게 한다든지, 과태료가 체납되었다든지, 법을 위반했다면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불안을 조장한다. 두번째는 주의집중 곤란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불안하다고 속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속이려 해도 자세히 살펴보거나 따져보면 가짜 정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불안은 주의집중과 정상적인 판단을 어렵게 한다. 사기를 당하고 난 다음에야 그 뻔한 거짓말에 자신이 왜 속았는지 모르겠다며 뭔가에 홀린 것 같다고 자책하지만 불안한 상태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가족은 물론 애인,
직장 동료가 요청하는 도움의 손길도
그냥 외면할 수 없어서,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까지도 신용으로 돈을 넘겨준다.
언제까지 꼭 갚겠다던 그 사람과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제야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情)때문에, 모르고 속고 알면서 속고

불안하기에 주의집중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어서 속거나 뒤통수를 맞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사기범죄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학부모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홈쇼핑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술쇼에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서양과 달리 한국인들이 뒤통수를 맞는 대상 중 상당수는 지인이라고 한다. 서양의 경우는 부모자식 간이라도 돈거래가 철저하다. 성인이 된 자녀와는 공식적이고 정식적 절차를 밟아서 진행한다. 하지만 정(情) 문화인 한국에서는 부모자녀는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이더라도 도와달라는 요청을 무시하기 어렵다.
가족은 물론 애인, 직장 동료가 요청하는 도움의 손길도 그냥 외면할 수 없어서, 작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까지도 신용으로 돈을 넘겨준다. 언제까지 꼭 갚겠다던 그 사람과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제야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情)이 신용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모르고 당하든, 알고 속든 더이상 뒤통수를 내주는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다음을 기억하자. 1. 아주 급하다는 재촉을 받더라도 평정을 유지할 것. 불안한 채로 행동하면 냉철하게 판단하기 힘드니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다. 2. 주어진 정보를 꼼꼼히 확인할 것. 일단 의심이 든다면 검색을 통해 혹은 주변 사람을 통해 가짜정보인지 아닌지 살피자. 3. 정 때문에 돈을 빌려주지는 말자.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관계를 끊겠다고 협박하는 사람은, 어차피 그럴 사람이다. 진짜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다면, 받지 않을 생각으로 줄 수 있는 만큼 주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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