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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색,  천개의  

하늘을 닮은 아쿠아블루(Aqua Blue)

하늘과 바다는 땅과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자연의 공간이자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색깔이기도 하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을 자주 마주하는 요즘, 푸르스름하면서도 흰색을 띠는 이 아름다운 색상은 그래서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 성지선(문화칼럼니스트)

화가를 매료시킨 색상

“어느 순간 갑자기 연못에서 황홀경을 보았다.” 인상주의라는 말을 탄생시킨 장본인, 프랑스 미술계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남긴 말이다.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죽을 때까지 지켰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꼽히는 <수련> 연작을 발표한다.
1883년부터 프랑스의 시골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한 클로드 모네는 집 앞에 ‘꽃의 정원’과 인공 연못을 파서만든 ‘물의 정원’을 조성했는데, <수련> 연작은 두 정원 중 ‘물의 정원’ 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연못으로 쏟아지는 햇볕과 물에 반사된 빛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관찰하느라 모네는 세번이나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청시증과 황시증을 앓다가 결국 왼쪽 눈은 실명하고 만다.
모네가 천착한 것은 비단 수련이라는 꽃 자체만은 아니었다. 그는 수련이 피어 있는 연못의 표면,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신비로운 수면의 모습에 관심을 두었다.
작품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울트라마린(Ultramarine) 등의 깊고 선명한 푸른색을 십분 활용하는 한편, 은은한 푸른빛의 아쿠아블루(Aqua Blue)를 감각적으로 해석해 아름답게 흔들리는 물의 움직임을 표현해냈다. <아르장퇴유의 모네의 정원>속 표현된 은은한 하늘에서도 그가 사용한 특유의 아쿠아블루 컬러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네가 즐겨쓰던 독창적인 연못의 색과 하늘의 색은 일명 ‘모네블루’라고 불리며 사랑받기도 했다.

Aqua Blue 일명 ‘하늘색’이라고도 불리는
아쿠아블루는 ‘물색’, ‘바다색’, ‘아쿠아마린’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는 색깔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너그러운 희망을

일명 ‘하늘색’이라고도 불리는 아쿠아블루는 ‘물색’, ‘바다색’, ‘아쿠아마린’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는 색깔이기도 하다. 광물중에서도 이 색상을 가진 보석은 우리말로 녹주석, 영어로는 ‘아쿠아마린(Aqua Marine)’이라 불리며 크게 사랑받아왔다. 녹주석에는 사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진한 청록빛을 띠는 것이 유명한 에메랄드(Emerald)이고, 투명한 하늘빛을 띤 것이 아쿠아마린이다.
에메랄드는 상품가치가 높아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상류층에게 인기가 많은 광물이었지만, 아쿠아마린은 안전한 항해를 바라는 선원들의 상징물로 쓰이거나 병들고 아픈 사람들에게 신이한 힘을 가진 돌로 여겨지는 등 일반 사람들의 희망을 담은 보석이었다. 마치 어두운 바다속 한줄기 등불과 같아 ‘밤의 보석중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중세시대에는 아쿠아마린을 소지하면 미래를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이 생겼다고 믿었으며, 영원한 젊음과 행복, 희망과 건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쿠아마린을 담근 물에 눈을 씻어 눈병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숨이 찰 때나 딸꾹질을 할 때 아쿠아마린을 담가놓은 물을 마셔 증상을 완화시켰다고 한다. 또한 신경질적이고 성질이 급한 사람에게 종종 아쿠아마린 반지를 선물하곤 했는데, 이는 아쿠아마린에 심신을 안정시키고 피로감을 저하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경을 뛰어넘은 하늘색 스포츠맨십

아르헨티나 축구국가대표팀은 뛰어난 실력으로도 명성이 높지만, 국기에서 따온 유니폼으로도 유명하다. 늘 비슷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나와 어딜 가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이름 대신에 ‘라 알비셀레스테(La Albiceleste, 흰색-하늘색)’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유니폼에는 본국의 국기에서 영감을 얻은 하늘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그려져 있다. 이 색상은 스페인으로부터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추진했던 마누엘 벨그라노(Manuel Belgrano, 1770~1820) 장군이 1812년 처음 지정한 색깔로서 각각 하늘과 땅을 의미한다.
스포츠에서의 상징적인 하늘색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로 30년 만에 개최하는 올림픽으로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일조한 세계적인 행사였다.
이 역사적인 개회식의 현장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선수단은 흰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가 새겨진 남북 단일기,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다.
한반도기는 1989년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참가와 관련해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처음 논의되었다. 남측은 흰색 바탕에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 한반도를 그리고 영어로 ‘KOREA’를 쓰길 원했지만 북측은 흰색 바탕에 농경민족인 우리의 땅 색깔인 황토색의 한반도를 그리고 ‘KORYO’를 적자는 의견이었다. 무려 9차례의 본회의와 6차례의 실무접촉 끝에 단일기의 모양과 색이 결정됐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 푸른 물결을 나타내는 하늘색의 한반도 지도’다.
한반도기는 1991년 일본 치바에서 개최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했는데, 이때 남북단일팀은 대회 9연패에 도전하던 최강팀 중국을 꺾고 우승에 올라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깃발속 한반도를 물들이고 있는 아쿠아블루 컬러는 평화를 상징하는 컬러로서 갈등의 해갈과 새로운 희망을 내포한다.

Aqua Blue 깃발속 한반도를 물들이고 있는
아쿠아블루 컬러는
평화를 상징하는 컬러로서
갈등의 해갈과 새로운 희망을 내포한다.
하늘에 깃든 맑고 온유한 평화

아일랜드의 과학자이자 산악인인 존 틴달(John Tyndall, 1820~1893)은 빛과 색에 대해 남다른 과학적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빙하학과 알프스에 매료되어 세계 산악인 클럽인 알파인 클럽에 들 정도로 등반을 즐겼으며, 공기 입자와 햇볕의 충돌로 인해 생기는 빛의 산란을 밝혀냄으로써 하늘이 왜 파란색인지 설명해낸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높은 산에 오르면 머리가 맑아지고, 푸른 하늘을 보면 가장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하곤 했다.
틴달의 말처럼, 하늘을 닮은 아쿠아블루는 실제로 두통을 완화하고 머리를 맑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시각적으로도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어 시원하고 평온한 인테리어를 구상할 때 자주 쓰인다. 편안하고 너그러운 속성 때문에 밝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유아방을 꾸밀 때 1순위로 꼽히는 색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처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하늘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양한 이름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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