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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행동에서
사회현상의  해법을  찾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

과학을 세상밖으로 끌어내는 학자가 있다. 과학과 대중의 소통을 위해 우리 사회에 생물의 다양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는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이다. 그는 인간을 동물의 세계와 견주어 바라본다면 사회현상에 대한 풀리지 않는 고민이 쉽게 이해된다고 말한다. 인간 역시 동물의 한 개체이기에.

| 이미혜 사진 | 선규민

Q  최근 세계적인 과학 출판사 엘스비어에서 <동물행동학 영문백과사전>을 출간했다. 전 세계 필자 530명을 진두지휘하는 총괄 편집장을 맡았다. 이 작업은 어땠나.

지난 10여년 동안 자연과학,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백과사전을 만드는 것이 붐이었다. 동물행동학도 2010년에 백과사전을 만들었는데, 그때는 편집자로 참여했다가 3년전에 개정판 작업에 총괄 편집장을 맡아 달라고 해서 고사를 하다가 수락했다.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인지·진화·학습·번식 등 15개 주제로 동물행동학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가 수록됐다. 3년 동안 거의 매일 외국 출판사, 해외 과학자들과 전화, 이메일로 조율하느라 힘들었다.
하지만 동물행동학에 관한 저명한 학자들의 논문을 집대성할 수 있는 경험이었기에 자존감이 높아진 기회라 생각한다. 개정판에서는 15개 분야로 세분화해 주제별로 구성을 달리했다. 덕분에 전체 균형감과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다. 수의사나 동물 다큐멘터리 제작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이다.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지만, 이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Q  동물행동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학문인지 소개한다면.

동물행동학자는 사냥꾼 다음으로 역사가 오래된 직업이다. 동물 행동을 연구하면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단서도 얻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제대로 알고 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표현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물행동학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사회안에서 보면 느끼지 못했던 것, 인간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주는 학문이다. 사회의 여러 현상을 다른 동물의 세계와 견주어 보면 색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경제학이나 법학 전공자가 동물행동학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 분야를 연구하는 이가 많지 않다. 학회를 연다고 하면 10명이나 모일까? 그래서 우리 사회에 다양한 시선을 부여하기 위해 강연을 많이 다닌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강의도 자주 하고, ‘부계 혈통주의는 생물학적 모순’이라고 의견을 밝힌 덕분에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후 사법연수원에서도 강의를 해왔다. 법학이 생물학과 손을 잡으면 법이 따뜻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다음 달에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연구원을 대상으로 강연할 예정이다.

Q  ‘동물 행동을 연구하면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 규제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 분노와 불평등이 불러일으키는 사회갈등이 동물 행동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는 너무 구체적으로 정답을 요구한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정답을 명확하게 낼 수 있는가. 해볼 만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든지 새롭게 문제를 풀어보면서 터득해가는 정도가 가능한데, 동물 행동이 방향성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하버드대학 유학 시절 아스텍 개미를 연구했는데, 개미 사회는 일개미의 수로 운명이 갈린다. 남미 밀림에서 아스텍 여왕개미 두마리가 종(種)이 다름에도 함께 알을 낳고 일개미도 같이 키우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다른 개미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오늘날 사회 갈등도 개미처럼 ‘경쟁적 협력’을 통해 생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Q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이 기본이다. 강자인 척 하는 약자들의 싸움이 사회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동물에게서도 발견되는가.

물론 동물 세계에도 있다. 강한 척 해서 상황을 이겨보려고 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이는 오랜 진화의 역사가 해결한 문제이다. 싸움은 돌발성이 강하기에 으뜸 수컷도 가늠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사슴의 경우, 둘이 싸울 때 처음에는 서로 멀리서 저음 경쟁을 한다. 울림통이 큰 만큼 저음이 크게 나니까. 그러다 해볼 만 하다 싶으면 나란히 서서 어깨를 대고 걸어보다가 어깨가 높으면 도망가고, 되겠다 싶으면 확 돌아서서 부딪히고 싸운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포장한다. 뿔이나 사자의 갈기가 거드름의 결과다. 실제로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거드름을 키우는 데 쏟는다. 그래서 수컷이 암컷보다 더 화려하다. 일종의 광고효과처럼. 내가 뭔가 있는 것처럼 학위를 위조하거나 과시하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소식을 보면서 혼자 웃을 때가 많다. 비슷한 동물 세계가 바로 떠올라서.

Q  저출산 고령화나 인구 감소도 심각한 사안이다. 이러한 문제를 동물행동학에 비춰본다면.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저출산 고령화는 진화의 산물이다. 이게 그냥 된 것이 아닌데, 이를 전면으로 거부하면서 정책을 세운다는 게 과연 현명한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진화적으로 타당한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쳐 급성장한 동물이다. 지금의 모든 환경문제는 인간이 너무 많아서 발생했다. 아직도 전 지구적으로 본다면 너무 많은 인간이 태어나고 있다. 결론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주하면 된다.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을 자유롭게 하면되는데, 사회적으로는 어려운 문제이다.

Q  얼마전 <최재천 교수의 어린이 개미 이야기>를 출간했다. 창의성, 판단력, 나눔, 끈기 등 개미의 덕목을 15가지로 분류했는데 현대인이 가장 주목해야 할 개미의 덕목은 무엇인가.

40년 넘게 개미를 연구했다. 개미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동물이다. 이러한 덕목을 15개나 가진 동물은 인간과 개미뿐이다. 무척추동물, 곤충이라 진화의 역사에 보면 멀리 있는데, 누가 누구의 답을 베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인간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개미는 우리보다는 셈이 약간 느린지 지금 당장 나한테 도움이 안 되더라도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해서 잘살았다'하면 그 계산에 따라서 묵묵히 진득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이런 진득함은 요즘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Q  새마을금고의 뿌리가 협동조합이다. 회원의 출자금이 많아지면 금고가 성장하고, 그만큼 지역환원사업도 확대되며 이것이 곧 회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선순환구조이다. 동반성장을 위해 필요한 덕목을 개미에게 묻는다면.

자본주의사회가 되면서 마을 공동체보다는 내 가족 중심으로 부가 축적됐다. 지나치게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는 사회이다. 공동체 정신과 책임감만큼은 개미가 인간보다 낫다. 거북이 개미는 특이하게 이마가 넓적하고 평평하다. 그런데 이런 이마를 가졌다는 이유로 굴문을 막는 역할을 한다. 굴문을 막고 있다가 다른 개미가 나가서 먹이를 가지고 와서 더듬이로 그 이마에 암호를 보내면 문을 열어준다. 그 암호가 맞아야만 비켜준다.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한 거북이 개미는 죽을 때까지 꼼짝 않고 문지기 역할을 한다. 얼마나 단단하게 막는지 찔러봤는데, 머리가 깨질 때까지 그 책임을 다하더라. 희생에 가까우리만큼 책임을 다한다고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다 같이 잘살기 위해서다.

Q  생태학자,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2030 에코포럼 대표, UN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 등으로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10년 넘게 매달린 작업이 있다. 2009년은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는데, 다윈에 관한 연구는 대한민국이 후 진국 수준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자료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을 번역해왔다. 요즘에야 짧게 써야 좋은 글이라 하지만 다윈 시대에는 길게 쓰는 게 좋은 글이라 어떤 글은 마침표 없이 한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 올해 후반에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를 내놓고, 내년에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을 발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다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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