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軟鷄

닭도리탕과
영계에  대한  오해

복날이 오면 어김없이 삼계탕을 찾는 이들이 많다. 꽉 찬 영양의 보양식으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치킨 한마리로. 때로는 사위에게 잡아주는 씨암탉 한마리로. 닭을 재료로한 밥상 위 친숙한 요리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먹거리 밑천 씨암탉

처가를 방문한 사위가 씨암탉을 먹지 못했다면 사위 노릇을 제대로 했는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씨암탉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여전히 씨암탉과 사위는 매우 밀접한 연관어이다. 사실 씨암탉은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씨를 받기 위한 암탉, 모아서 병아리로 부화시킬 알을 낳는 닭이 씨암탉이니 그 닭이 없어지면 닭을 계속 기를 수 없다. 그만큼 사위를 귀하게 대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살림 밑천이 귀한 딸을 도둑질해 간 것도 부족해 먹거리 밑천인 씨암탉까지 먹어치우는 나쁜 사위는 자신의 배만 채울 것이 아니라 장모님의 살뜰한 그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한국의 음식문화가 되어버린 ‘치맥’

요즘에는 닭이 워낙 흔해져서 장모님이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 되었다. 시장에 있는 닭집에 가면 생닭이 지천이고 동네에 한집 건너마다 있는 치킨집에서 배달시켜 먹어도 된다. 닭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가 치킨일 뿐인데 두 단어 간에 묘한 관계가 성립된다. 닭을 재료로 만든 음식 중에 통닭은 전기를 이용해 통째로 구운 닭을 뜻한다. 치킨은 튀김옷을 입힌 뒤 기름에 튀겨 내거나 여기에 다시 양념을 입힌 것을 가리킨다. 닭은 닭이되 음식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외래어를 걸러내자는 국어순화운동에 발을 맞추자면 치킨은 추방되어야 할 텐데 갈수록 세력이 커지고 있다. 치킨과 맥주가 잘 어울린다고 해서 어느 순간 치맥이란 말이 만들어지더니 이것이 마치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문화인 양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치킨(chicken)과 비어(beer)가 합쳐진 것이니 ‘치비’가 되어야 한다. 어법을 더 따진다면 ‘닭맥’이나 ‘계맥(鷄麥)’이 맞을 텐데 이미 치맥이 대세가 되었으니 되돌릴 방법이 없다.

치킨은 되고, 닭도리탕은 안되고?

영어에서 온 치킨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있는 현실을 보노라면 꽤나 씁쓸해 할 음식이 있는데 닭도리탕이 그것이다. 이 음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규모 양계장이 들어선 일제강점기 이래 산란율이 떨어지는 노계나 폐계가 시장에 나오면서 이 음식이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기가 맛이 없어서 여러 가지 채소와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다보니 이런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닭의 일본어 니와토리(にわとり), 더 넓게 새를 뜻하는 도리(とり)가 우리말 닭과 어우러져 닭도리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의 진위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20세기 초반에도 이와 비슷한 음식이 있었겠지만 닭도리탕이 일반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우리말과 일본어가 결합돼 ‘닭닭탕’ 또는 ‘닭새탕’이 되었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도리탕이란 음식이 이미 있었는데 닭을 재료로 한 것이니 닭도리탕이 되었다는 설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1980년대 이후 닭고기를 주재료로 한 도리나베란 음식이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이 음식의 영향으로 닭도리탕이란 말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전 신문을 검색해 보면 닭도리탕이란 말이 나오지 않으니 가능한 설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일본어 순화에 있다. ‘도리’가 일본어일 가능성이 있으니 이를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제시된 이름이 닭볶음탕인데 이 이름은 이 음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괴한 이름이다. 음식 조리법 중에서 볶음과 탕은 조리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니 같이 어울릴 수 없다. 닭을 뜻하는 일본어인 도리는 안 되고 영어인 치킨은 된다는 것은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있다. 여러모로 닭도리탕을 둘러싼 논쟁은 떨떠름하다.

영계의 어원은 연계(軟鷄)

통닭, 치킨, 닭도리탕 등 닭을 재료로 하는 많은 음식이 있지만 닭 요리의 원조는 역시 백숙이다. 백숙은 양념 없이 그저 삶아낸다는 뜻인데 재료를 써서 본연의 맛을 느끼고자 한다면 이 조리법이 최고다. 그런데 이 백숙 앞에 영계가 붙는다. 닭에 인삼을 넣어 끓인 삼계탕에 쓰이는 닭도 영계이다. 이 영계가 도대체 뭘까? 어린 닭이니 누군가는 ‘young+닭’이라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아니다 살이 연하다는 뜻의 연계(軟鷄)가 본래의 말인데 말소리가 변해서 영계가된 것 뿐이다.
요즘 치킨에 쓰이는 닭은 실제로는 병아리이다. 몸집은 다 큰 닭처럼 보이지만 알에서 깬 지 많아야 40일밖에 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병아리인 것이다. 육계 기술이 발달한 덕분이고, 그 덕에 수많은 닭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뭐라고 할 일은 아니다. 닭의 처지에서는 안타깝지만 이마저도 사람의 입과 배를 위한 것이니 괜찮다. 다만, 이 말을 사람에게 써서 ‘젊은’ 혹은 ‘어린’의 뜻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닭을 재료로 하는 요리에 붙여진 이름은 천차만별이나 때때로 주식을 책임지는 귀한 것이니만큼 바람직하게 불러주자.

* 이 글은 필자가 2016년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일부를 추려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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