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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말고
혼자만의  축제를
선물하라

다큐멘터리 PD & 여행저널리스트 탁재형

7년간 5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EBS <세계테마여행>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탁재형.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여행이 품은 저력을 알게 되었고, 이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2013년부터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왔다. 여행의 힘을 전파하는 전도사이자 프로여행러 탁재형 PD를 통해 간접 여행을 떠나볼까.

| 이미혜 사진 | 선규민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들은 이야기를 여행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여행 콘텐츠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 생각한다.

Q  EBS <세계테마기행>, KBS <영상앨범 산> 등 여행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지 15년이 넘었다. 2013년부터 시작한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는 어떤 콘텐츠를 주로 다루나.

1주일에 2번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고, 들은 이야기를 여행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여행 콘텐츠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 생각한다. 그래서 대리만족 할 수 있는 먼 곳의 이야기와 즉시 활용 가능한 정보성 이야기를 균형있게 배치하려고 노력한다.

Q  팟캐스트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나.

<탁PD의 여행수다>를 시작한 건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이야기하고싶어서였다. 일상의 소중함은 당연하지만, 일상이 지닌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면 외부에서의 에너지 반입이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일상 밖에서 얻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이고, 본격적인 방법이 여행이다. 그걸 할 수 있게끔 계속 바람을 넣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Q  팟캐스트와 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가깝게 소통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산티아고 방송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김병준 사진가를 초청해 방송했다.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한 순간부터 도착했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기록해 이를 방송했는데, 산티아고 순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주옥같은 정보라 평가받는다. 그 방송을 들은 후 산티아고로 떠난 이들도 여럿 봤다.
청취자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도 자주 실행하고 있다. 올해 초 청취자와 일본여행을 다녀왔고, 얼마전에는 발리에도 갔다. 발리여행에는 개인병원을 닫고 오거나 재미교포가 발리까지 날아왔다. 오랜 시간 방송을 지지해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방송을 지속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Q  평소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을 꿈꾼다’라고 말하는데, 자신을 유목민 PD라 부르는 이유인가.

사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무전여행이나 배낭여행 한번 가보지 않았다. 도전지구탐험대 감독님이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저 아이템의 초원을 찾아 떠도는 ‘생계형 유목민’이었을 뿐이다. 여행을 구분짓는 가장 큰 기준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다. 일상의 탈출로 하는 여행과 출장으로의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취재와 촬영은 일상을 다 짊어지고 가는 거니까. 일로 여행을 다니면서 갈망이 더 커졌다. 그래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나 실컷 해보자는 의도로 방송을 시작한 것도 있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70% 정도 될 것 같다. 나머지 30%는 영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에 벌려놓은 프로젝트들과 회사 운영에 대한 현실이 채우고 있다. 방식만 다를 뿐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여행을 관통한다. 사람들에게 일상의 탈출로 여행을 권하면서 정작 나에게 여행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Q  50여개국을 넘게 여행 다니면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찔했던 순간이 있었나.

오지로 촬영을 하러 가면 아찔한 순간이 비일비재하다. 에콰도르에 갔을 때 3인조 강도를 만났는데 소리를 지르며 끝까지 쫓아가 가방을 되찾은적이 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총이 흔한 지역이라 자칫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현지인들의 조언에 귀 기울여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목숨 걸고 얻은 셈이다.

Q  반대로 여행다큐 PD 하길 참 잘했다 싶을 만큼 황홀했던 여행지도 궁금하다.

히말라야이다. 그래서 지금도 1년에 2번은 꼭 히말라야에 간다. 황홀함은 자기가 들인 수고만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고생끝에 어느 지점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황홀감이 확실하고, 정당하다. 그런 점에서 히말라야가 제격이다. 히말라야 랑탕지역의 체르코리는 4,984m 높이의 봉우리이다. 고소지역이라 평지 산소의 60%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황홀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웃음) 체르코리 봉우리에 서면 티베트 쪽으로 펼쳐진 히말라야가 병풍처럼 보인다. 그걸 바라보면 황홀할 수밖에 없다. 고행을 버틴 후 맞이하는 순간이라 더 매력적이다. 연말에 그 황홀감을 느끼러 다시 히말라야를 찾을 생각이다.

Q  수많은 여행자가 여행 후 삶이 달라지길 기대하지만, 금세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온다. 일상의 환기에 그치지 않고, 여행을 통해 더 나은 일상을 이어나갈 방법은 없을까.

여행에서는 일상에 반하는 가치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일상적이지 않은, 효율적이지 않은 것들 말이다. 여행지에서 한끼에 지불하기에는 비싼 식사를 해보며 사치도 누려보고, 비효율적이고 즉흥적으로 다녀보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라. 그러면 그 여행의 가치가 배가될 것이다. 비행기도 착륙할 때 적응시간을 가진 후에 활주로에 안착한다. 여행의 마지막을 현지에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둥지로 돌아와 관조하는 시간을 갖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여러 이유로 떠나기를 주저하는 이들도 있다. 여행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린다면.

여행은 철저히 파괴적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돈을 파괴하고 내 일생의 한부분을 비생산적이고 의미없는 부분으로 던지는 것이다. 그래서 겁날 수 있다. 축제라는 뜻의 카니발(Carnival)은 가톨릭에서는 사육제를 뜻한다. 사순절에 앞서서 3일 또는 일주일 동안 즐기는 명절이다. 고통스러운 기간에 돌입하기 전에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는 게 카니발의 정신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도 행복의 밑천을 키워놔야 버틸 힘이 생긴다. 여행은 나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는 ‘혼자만의 축제’와도 같다. 값어치 있는 ‘혼축’을 두려워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Q  새마을금고는 전국 각지에 자리하고 있다. 올여름, 국내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여행지를 추천한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서해의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인천부터 충청, 전라까지 거쳐있는데, 많은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자동차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서울에서 접근하기 좋은 영종도를 추천하고 싶다. 한적하면서도 즐길 거리가 많은 섬이다. 을왕리 해수욕장도 있고, 배를 타고 더 작은 섬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오성산에 공항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비행기 이착륙을 보는 걸 좋아한다. 비행기가 주는 몽롱함을 한번 경험해보시라.

Q  일상처럼 여행하는 탁PD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하다. 아울러 인생의 마지막 행선지로 정해놓은 곳이 있는지.

8월 말에 청취자들과 몽골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 행선지는 미정이다. 내게 여행은 미정의 연속이다. 아마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때 있는 곳이, 나의 마지막 행선지가 되지 않을까.

여행에서는 일상에 반하는 가치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일상적이지 않은, 효율적이지 않은 것들 말이다.
여행지에서 한끼에 지불하기에는 비싼 식사를 해보며
사치도 누려보고, 비효율적이고 즉흥적으로 다녀보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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