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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금융업에  대한  시선,
명화에  드러나다

현대사회에서 금융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 중 하나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금융업’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업의 발달 초기에 이 사업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당시 그려진 명화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 태지원(<그림이 보이고, 경제가 읽히는 순간> 저자)

<환전상과 그의 아내>(쿠엔틴 마시스, 1514)
돈을 만지는 자여, 탐욕을 경계하라

그림속 남자는 환전상이다. 그는 지금 동전의 무게를 저울로 재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아내는 기도서의 책장을 넘기는 중이지만, 그녀의 눈은 돈을 향해 있다. 이 그림은 16세기 안트페르벤(플랑드르지방에 위치한 벨기에의 도시)에서 활동했던 화가 쿠엔틴 마시스가 그린 작품으로 <고리대금업자와 그의 아내>, <은행가와 그의 아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당시 안트페르벤에서는 유럽 여러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 활동하며 상업과 무역이 번성하고 있었다. 이 상인들은 각자 자국의 화폐를 사용했는데, 서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환전을 해야 했다. 덕분에 이 지역에는 많은 환전상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업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 중세 기독교에서는 돈을 빌리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부정적으로보았다. “네 이웃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기독교 교리 때문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빚을 질 때 높은 이자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많아 중세 기독교 교회는 이자를 받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였다. 때문에 대부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며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며 이러한 원칙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인들은 큰거래를 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환전이나 대출 등의 금융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금융업의 발달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환전상과 그의 아내>에서도 기독교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환전상이 들고 있는 천칭저울은 ‘최후의 심판’에서 천국과 지옥행을 가르는 기구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물건을 재고 달 때 부정하게 하지 마라’는 구약성서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테이블 옆 기도서 옆에는 볼록거울이 있는데, 이 거울에 비치는 것은 십자가 형태의 창문과 성당의 종탑이다. 그들의 뒤에 있는 오렌지는 성경속의 사과와 같이 원죄를 나타낸다. 이처럼 그림 속 대부분 소품들은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환전상과 그의 아내는 현재 ‘돈’이라는 세속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기도서와 천칭저울, 볼록거울 속에 나타난 성당의 모습 등은 탐욕을 경계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준다.

<환전상과 그의 아내>
(마리누스 판 레이메르스벨레, 1538)
쿠엔틴 마시스의 그림과 비슷한 구도와 주제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두 세금 징수원>
(쿠엔틴 마시스, 1540)
오른쪽 세금 징수원은 탐욕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당시에는 ‘돈을 만지는 직업’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했다.
<봄>(보티첼리, 1478)
‘이자놀이’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한 메디치가의 예술 후원

<봄>은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르네상스기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작품으로, 그리스·로마신화 속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림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며 신화 속 인물인 전령의 신 헤르메스, 삼미(三美 )신,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 님프인 클로로스, 다산과 꽃의 여신인 플로라,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보인다.
이 그림은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이었던 메디치가(家)의 주문으로 제작되었다. 메디치가는 르네상스 최대의 예술 후원자로, 보티첼리 뿐 아니라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등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한 가문이다. 어째서 이 부유한 가문은 예술 후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원래 메디치가는 피렌체의 소규모 금융업에서 출발해 많은 부를 축적하며 힘을 얻었다. 메디치가 성공의 기틀을 다진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는 기존의 고리대금 대신 환전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수익을 얻었다. 고리대금업에서 정식은행업으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다. 그는 피렌체의 본점 외에도 피사나 밀라노, 제네바 등에 7개의 은행 지점을 열었다. 이 지점 간의 거래로 바티칸의 교황에게 가는 현금을 옮겨주며 수수료를 받았고, 이후에는 바티칸 교황들의 주요 거래 은행이 되었다.
이토록 엄청난 성과를 이룬 메디치가였지만, 은행업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기독교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이자놀이로 돈을 번 가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예술 후원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예술 후원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며 상류층의 이미지를 얻고, 더불어 이자로 이윤추구를 하는 것을 합리화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후원을 받았던 대표적 화가 중 한명이 보티첼리로, 그가 그린 <봄>에서도 메디치가에 대한 메시지가 드러나 있다. 꽃의 여신인 플로라가 등장하여 꽃을 피우고 봄을 몰고 온다는 것은 피렌체(이탈리아어로 꽃의 도시라는 뜻)에 영광과 번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화면의 가장 왼쪽에 있는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인 한편 상인들의 수호신이며, 그가 따고 있는 오렌지는 메디치가를 상징한다. 즉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통해 피렌체에 영광을 몰고 올 새 시대의 주인공으로 메디치가를 지목한 것이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초상>
(폰토르모, 1518~1520)
<동방박사의 행렬>
(베노초 고졸리, 1459~1462)
성경속 이야기인 동방박사의 행렬에 메디치가 사람들의 얼굴을 등장시켰다. 행렬의 앞쪽 말에 탄 젊은 인물이 로렌초 데 메디치, 그 뒤 빨간 모자를 쓰고 말에 탄 인물은 코시모 데 메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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