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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칠맛

갖은 양념 듬뿍?!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붓끝에서 이뤄지는 그림의 완성이라면, 요리의 완성은 손끝에서 이뤄진다. 상에 올리기 전 솔솔 뿌려내는 깨소금 한줌, 고명을 올린 비빔국수에 한바퀴 둘러내는 참기름이 그렇다. 열손가락에 다 꼽기에도 부족한 갖은 양념들은 꽤 오래전부터 요리의 완성을 이끌어 왔다.

|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음식의 맛을 돋우는 양념

한자어 ‘약념(藥念)’에서 왔다고 말한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약을 생각하다’ 정도의 뜻이고, 더 나아가 ‘음식을 약으로 생각하다’로 넓혀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럴듯해 보이지만 근거를 찾기 어렵다. 방언에서 확인되는 ‘양넘, 양님, 양염, 양임’ 등을 고려해 보아도 이 단어가 한자어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념의 어원을 따지는 것은 하늘의 어원을 따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말소리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하늘은 본래 ‘하늘’이듯이 양념도 애초부터 ‘양념’이나 이와 유사한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양념’은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하여 쓰는 재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된다. 음식을 만들 때 간을 맞추기 위해 들어가는 소금과 간장도 양념이고, 단맛을 내기 위해 넣는 설탕도 양념이다. 파, 마늘, 고추, 깨소금 등 특별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한 것도 양념이다. 조리할 때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갖가지 재료의 양념을 골고루 쓰면 특히 ‘갖은 양념’이라고 하기도 한다. 매운맛이나 향을 더해주는 재료들을 따로 ‘향신료’라고 하기도 하는데 단어 자체도 한자어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음식에나 들어가는 재료일 듯한 느낌이 난다.

감칠맛=조미료=MSG?

뜻은 비슷하되 양념과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단어가 있으니 ‘조미료’가 그것이다. 한자로는 ‘調味料’라고 쓰니 맛을 조절하는 재료라는 뜻이다. 양념도 맛을 조절하기 위한 재료이니 결국 같은 뜻이 되어야 하나 현실에서의 쓰임은 조금 다르다. 양념은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그대로 살려 맛을 내는 재료를 뜻한다. 이에 반해 조미료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등의 맛을 내기 위해 따로 추출해 내거나 합성해 낸 재료를 뜻한다.
사실 양념과 조미료의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기도 하다. 우리의 머릿속에 ‘조미료’가 특별한 단어로 각인된 이유는 순전히 ‘글루탐산모노나트륨(monosodium glutamate)’ 때문이다. 이렇게 화학물질로 말하면 낯설지만 약어 ‘MSG’라고 하면 누구나 금세 알아들을 수 있다. 이 MSG는 감칠맛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가지 기본적인 맛 외에 감칠맛이라는 것이 정의되고 그 맛을 내는 성분이 다시마에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맛을 내는 성분을 인공적으로 합성해 내기 시작하면서 ‘조미료’는 곧 ‘화학조미료’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지노모토에서 미원으로, 그리고 다시다

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보면 ‘이것만 잇스면 이 세상 음식은 자유자재로 모다 맛잇게 할 수 잇습니다.’와 같은 문구의 광고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바로 MSG를 상품화한 ‘아지노모토(味の素)’의 광고이다. 상품명 자체가 ‘맛의 바탕’이란 뜻이니 이것 하나면 모든 음식을 맛있게 탈바꿈시킬 수 있는 신비의 재료이기도 하다. 광고 횟수, 삽화의 다양성, 카피의 선정성 등 모든 면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이니 당시에 이 조미료가 얼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아지노모토 듬뿍’은 모든 음식을 맛있게 하는 비법이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아지노모토가 물러난 자리를 두고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한 기업인이 이 조미료의 제조법을 익힌 후 ‘味の素’의 이름을 ‘미원(味元)’이란 이름으로 시장에 선보인다. 한자 ‘元’의 뜻이나 일본식 훈독 모두 ‘素’와 같고 맛도 그대로이니 아지노모토의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다른 기업에서 거의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 ‘미풍(味豊)’이란 이름으로 출시했지만 ‘미원’이 조미료란 뜻의 일반명사가 된 상황을 뒤집지는 못한다. 미풍의 완패로 끝난 줄만 알았던 전쟁은 ‘다시다’가 등장하면서 대역전극이 펼쳐진다. 결국은 MSG가 주성분인데 색과 포장이 바뀌었다. 화학약품처럼 보이는 흰 가루 대신 고깃가루로 보이는 갈색 가루로 바뀌었다. 포장지에 그려진 소와 그 앞에 붙은 ‘소고기’, ‘멸치’ 등도 고깃가루로 보이는 데 한 몫 했다. 흰 바탕에 빨간색만 두드러지던 비닐 포장이 컬러사진이 인쇄된 튼튼한 은박포장으로 바뀌었다. 앞뒤 어느 쪽으로 읽든 똑같이 읽히는 상표명은 ‘입맛을 다시다’란 뜻도 내비치고, MSG의 원조 격인 ‘다시마’도 연상시킨다.

양념은 그저 양념일 뿐

북녘에서도 MSG가 들어간 조미료를 쓸까? 당연히 쓴다. ‘미원’은 ‘맛내기’란 귀여운 이름으로 쓰고, ‘다시다’는 한때 ‘고깃가루’로 썼다가 지금은 남녘의 ‘다시다’를 그대로 쓴다. 다시다를 중국에서는 쇠고기 가루를 뜻하는 ‘우육분(牛肉粉)’으로 썼으니 초기에는 중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하다. 그러나 남녘의 풍습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기회가 많아짐에 따라 고깃가루를 본래의 상표명이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입맛이 다르지 않고, 남북의 말도 다르지 않으니 맛내기든 다시다든 쓰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MSG는 조금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가 있으라고 과장과 허구를 덧붙일 때 ‘MSG를 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본래의 이야기만으로는 밋밋하니 자극적인 요소를 가하는 것이 음식을 조리할 때 하는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야기든 음식이든 MSG가 과하게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뜻깊은 이야기라면, 건강하고 싱싱한 식재료라면 ‘갖은 양념 듬뿍’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양념은 그저 양념일 뿐이다.

*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일부를 추려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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