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container

12개의작은예배당을찾아가는
기점소악도
‘기적의 순례길’

‘병풍도’라고 해서 전남 진도군 조도면의 병풍도인줄 알았다. 전남 신안군과 충남 태안군에도 병풍도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행정구역이 신안군 증도면 병풍도리에 속한 섬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어미섬인 병풍도를 제외한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의 4개 섬은 뭉뚱그려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최근 이 4개 섬에는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생겼다. ‘한국의 산티아고’를 꿈꾸며 ‘기적의 순례길’도 열렸다.

글·사진 | 양영훈(여행작가)

시간과 바다의 허락이 있어야 비로소 열리는 노둣길

기점소악도행 여객선을 타려면 먼저 신안군청이 있는 압해도까지 가야 된다. 서울을 출발한 지 약 5시간만에 압해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송공항에 도착했다. 천사대교가 개통된 올해 봄부터 송공항은 한산해졌다. 이제는 배를 타지 않고도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 큰 섬들을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점소악도의 여러 섬들은 여전히 작은 철부선을 타야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점소악도의 섬들은 별 특색이 없었다. 일부러 찾아볼 만한 관광명소나 기암절경도 드물었다. 1,004개를 헤아린다는 신안군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그나마 유일한 자랑거리는 바다보다 더 넓은 갯벌뿐이었다. 갯벌은 주민들의 삶터이자 교통로이다. 물빠진 갯벌에서 낙지나 조개를 잡아 생계를 잇고, 갯벌에 돌을 다져 넣어 만든 노둣길을 통해 이웃 섬과 왕래한다. 밀물 때에 따로 떨어진 섬들은 썰물 때마다 노둣길을 통해 하나로 이어진다. 그러니 4개의 섬을 한꺼번에 둘러보려면 물때를 잘 맞춰야 된다.

안드레아의 집 안쪽에서 바라본 노둣길.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잇는 1km 길이의 교통로이다.
  • 소기점도 언덕에 있는 토마스의 집. 늙은 해송과 누군가의 묘와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사이의 노둣길 입구에 있는 필립의 집.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12개의 예배당 그리고 기적의 순례길

오랫동안 지극히 소박했던 기점소악도는 전라남도가 5년 동안 40억원을 지원하는 ‘가보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뒤부터 기적 같은 일이 생겨났다. 예수를 뒤따르던 12사도의 이름이 붙여진 예배당이 12개나 세워진 것이다. 10개는 이미 완공됐고, 1개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머지 하나도 올해안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 예배당들은 한국 작가 6명과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에서 온 작가 5명까지 합세해 총 11인의 예술가들이 설계를 맡았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나 흔한, 그렇고 그런 예배당들이 아니다. 매우 작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고 경건하다. 하나같이 5명쯤 들어가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내부 공간도 좁다. 그래서 오히려 혼자 기도하고 예배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기점소악도의 4개 섬을 두루 거치는 ‘기적의 순례길’을 자분자분 걷노라면 12개의 예배당을 다 둘러볼 수 있다. 길은 평화로운 섬들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전체 길이가 12km에 이르는 이 순례길은 부드럽고 평탄하다. 숨 가쁘거나 다리 뻐근한 구간은 어디에도 없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길을 평균 1km씩만 걸어가면 독특한 형태의 예배당이 하나씩 요술처럼 나타난다.

작은 목선을 뒤집어 놓은 듯한 필립의 집 내부.
걸음마다 마주하는 개성 뚜렷한 12개의 예배당

기적의 순례길은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시작된다. 바다 한가운데로 길쭉하게 뻗은 350m 길이의 콘크리트 구조물 끝에 선착장이 위치한다. 그곳에 그리스 산토리니섬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건물 2채와 아담한 종탑 하나가 서있다. 그중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의 건물이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이다. 사람들은 작은 종탑에 걸린 종을 가볍게 울린 뒤에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다.
두 번째 예배당인 안드레아의 집은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900m 거리의 기점마을에 있다. 대기점도와 병풍도를 잇는 길이 1km의 노둣길이 훤히 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았다. 예배당 앞의 바위에 올라앉은 고양이 상, 길이 1km의 노둣길 전경이 들어오는 내부 쪽창 등이 인상적이다.
세 번째 예배당인 야고보의 집은 외딴 산자락 옆의 밭에 세워졌다. 병풍도와 바다가 바라보이는 자리이다. 핑크빛 건물은 아이들의 소꿉장난 집처럼 작고 화사하다. 안쪽 벽에는 신라 동종 같은 불교 조각품에서나 볼 수 있는 비천상이 새겨졌다. 이곳의 12개 예배당이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만의 공간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네 번째 예배당인 요한의 집은 대기점도 남천마을 입구의 작은 저수지 옆에 서있다. 원통형의 하얀 건물과 형형색색의 타일로 꾸며진 염소상이 눈길을 끈다. 건물 앞에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계단과 마당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기에 좋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둣길 초입의 언덕에는 다섯 번째 예배당인 필립의 집이 세워졌다. 프랑스 공공조각 설치예술가인 장미셸 후비오가 프랑스 남부지방의 건축양식으로 설계했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갯돌과 벽돌을 섞어 쌓은 벽체, 기름 먹인 나무 조각을 물고기 비늘처럼 배치한 지붕이 독특하다.
노둣길 건너편의 소기점도에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예배당인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토마스의 집이 들어선다. 후비오가 설계한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특이하게도 저수지의 물 위에 띄워질 예정이다. 지금은 물을 빼고 터를 다지는 공사가 한창이다.
소기점도의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한 토마스의 집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소재로 삼았다. 마치 수도사의 집처럼 간결하고 소박한 사각형의 흰색 건물이다. 코발트블루의 문과 창문이 달렸고, 건물이 올라 앉은 네모진 바닥에는 파란 구슬들이 별처럼 박혔다.

  • 대기점도 남천마을의 작은 저수지 옆에 자리한 요한의 집.
  • 기점소악도에서 송공항으로 돌아오는 철부선에서 바라본 천사대교.
꿈길 같은 한나절의 순례길

소악도 남쪽 방조제 길의 끝에는 아홉 번째 예배당인 작은 야고보의 집이 있다. 동양적인 곡선과 서양식 스테인드글라스의 탁월한 조화가 돋보인다. 내부 바닥에 우리나라 전통의 대청마루를 깐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작은 야고보의 집에서 마주보이는 섬에는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이 있다.
‘딴섬’으로 불리는 이 섬은 은화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의 집이 자리하기에 제격일 성싶다.
나는 딴섬 언덕에 우두커니 세워진 가롯 유다의 집에 마음을 뺏긴 나머지 근처에 시몬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물빠진 갯벌을 건너야 마주볼 수 있는 유다의 집은 주변 풍광과 전망이 환상적이다.
예배당 안에서도 문만 열면 수십만 개의 나무가 촘촘하게 꼽힌 김양식장 너머로 천사대교가 또렷이 보인다. 물때에 쫓겨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어느덧 짧은 해가 서산에 걸렸다. 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배에 올라 돌이켜보니 한나절의 순례길이 꿈길 같았다. 비현실적인 공간을 두둥실 떠다니다 온 듯한 기분이다. 가슴은 뿌듯하고 느낌은 충만했지만,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에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조만간 이곳을 다시 찾으면 꼭 하룻밤 머물 작정이다.

TIP
  • 숙식

    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겸 식당이 소기점도에 문을 열었다. 그래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간식거리는 챙겨가는 것이 좋다. 마을 민가에서도 민박할 수 있다. 기점소악도 가보고 싶은 섬 추진위원회 위원장이자 협동조합 대표인 조범석씨(010-2624-2988)에게 문의하면 민박집을 알선해주거나 여행정보를 귀띔해 준다.

  • 교통

    압해도 송공항에서 해진해운(061-279-4222)의 철부선인 더존페리5호가 하루3회(07:40, 10:30, 15:00) 출항한다. 소악도, 소기점도를 거쳐서 대기점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대기점도까지는 1시간10분~1시간30분 소요. 자동차 선적도 가능하다.

  • 물때 정보

    국립해양조사원 스마트조석예보(www.khoa.go.kr/swtc)

서비스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