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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이냐 건더기냐 그것이 문제로다

해외여행의 초기에는 현지의 색다른 음식에 맛을 들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국에서 늘 먹던 음식들이 자꾸 떠오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진 쌀밥, 아삭아삭 매콤새콤한 김치가 그것이다. 밥과 김치는 이름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한데 그 실체가 무엇인지 조금 애매한 음식이 있으니 ‘국물’이 바로 그것이다.

| 한성우(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번역조차 쉽지 않은 국물의 정체성

펄펄 끓는 것을 한 술 떠 넣고는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 경계가 애매한 찌개나 국의 바탕을 이루는 것. 국물이 들어가야 속이 풀리고, 국물을 함께 떠 넣어야 다른 음식의 깔깔함이 비로소 해소된다.
‘국물’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기는 쉽지 않다. 번역의 어려움은 국과 찌개로부터 시작된다. 국은 영어로 ‘soup’으로 번역되는데 ‘수프’와 ‘국’은 엄연히 다르다. 찌개는 ‘stew’로 번역되는데 재료가 조금 달라서 그렇지 조리법이나 모양새는 비슷하다. 그런데 국물이 문제다. 찌개는 건더기뿐만 아니라 국물 맛도 중요한데 스튜는 건더기에 더 비중을 둔다. 국그릇 안에 넉넉히 담겨 있는 그것, 찌개 뚝배기에 자작자작 담겨 있는 그것을 가리키는 ‘국물’은 번역이 어렵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국물에 집착을 하며 후룩후룩 열심히 먹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시원한 국물 맛, 우리는 그렇게 표현한다. 뚝배기에서 펄펄 끓고 있는 탕의 국물을 한숟가락 떠서 후후 불어 들이키며 시원하다고 한다. 펄펄 끓는 뚝배기가 상에 오르는 것도 낯설지만 뜨거운 국물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하는 것은 더욱 낯설다.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다는 것, 뜨거운 목욕탕에 몸을 담그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것, 뻐근하도록 안마를 받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것 모두에 ‘시원하다’가 쓰이고 있지만 그 의미는 단어 본래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그 뜻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 말뜻 그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국물과 건더기로 이루어진 것이 국이라지만
국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밥과 어우러져야 한다.
밥상 왼쪽의 밥과 오른쪽의 국에 수저가 한번씩 가다가
어느 순간 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국물과 건더기의 묘한 상관관계

국은 국물과 건더기로 이루어진다. ‘국물’은 말 그대로 ‘국의 물’이고 건더기는 국에 들어있는 갖가지 재료들이다. 국물의 맛은 물 자체의 맛은 아닐 터이니 국물의 맛은 건더기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하다. 된장국 혹은 고추장찌개처럼 무엇을 풀어 끓였는가에 따라 그 이름이 정해지기도 하지만 쇠고기뭇국 혹은 김치찌개처럼 대개는 무엇을 넣고 끓였는가에 따라 이름이 정해진다. 결국 국의 참맛은 국물의 맛이기도 하고 건더기의 맛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속에는 국물과 건더기가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일을 하고 무언가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몫이나 이득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국물도 없다’는 말을 쓴다. ‘국물도’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건더기에 더비중을 두는 듯한 말이다. 해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미리부터 다 된 일로 알고 행동한다는 뜻의 ‘김칫국부터 마신다’ 역시 결과적으로 국물을 폄하하는 뜻으로 쓰인다.
그렇다고 건더기가 딱히 우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말할 건더기가 없다’는 표현이 그것인데 건더기를 국물과 대비시킨 말은 아닐지라도 건더기가 썩 좋은 뜻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건더기’는 ‘거리’로 바꿀 수 있는데 ‘거리’는 ‘재료’와 뜻이 통한다. 건더기가 없으면 재료가 없는 것이니 국이 될 수 없다. 더 이상 말해봤자 입만 아픈 상황에서는 건더기도 결국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국은 밥과 국물, 건더기가 함께여야 제맛

국물과 건더기로 이루어진 것이 국이라지만 국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밥과 어우러져야 한다. 밥상 왼쪽의 밥과 오른쪽의 국에 수저가 한번씩 가다가 어느 순간 국에 밥을 말아먹는다. 그러던 것이 뚝배기의 국에 밥이 아예 말아져 나오는 국밥이 탄생해 바쁜 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다. 그리고 또다시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이 등장한다. 본래 밥과 국은 ‘따로’인데 국밥에서 ‘같이’ 되었다가 따로국밥에서 ‘따로’가 된 것이다.
국과 밥의 ‘따로 또 같이’는 건더기와 국물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에는 국 없이 밥을 먹는 이들도 있지만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국이 없으면 깔깔하고 꺽꺽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만 훌훌 들이키기에는 너무 짜고 허전하다. 결국 밥과 국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건더기와 국물 또한 마찬가지다. 건더기 없이 국물이 만들어질 수 없고, 국물이 없는 건더기는 단물을 다 빼낸 음식쓰레기와 다를 바 없다. 국은 밥과 어울려야 하고 국은 국물과 건더기가 어우러져야 한다.
음식의 이름으로 탄생한 따로국밥이 현실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겉으로는 같이 있되 따로 놀고 있으면 따로국밥이라고 한다. 국물을 먹을 것인가 건더기를 먹을 것인가? 국과 밥은 따로 떠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말아 먹어야 하는가?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뜻을 같이 해야 할 사람들끼리 따로국밥인 상태로 있다면 가진 것 모두를 말아먹기 십상이다.

*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 일부를 추려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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